1초의 가능성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친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있다. 이미 진단을 받고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고 있는 사람. 병을 인정할 수 없어 참으며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 아닌 척 조증과 울증을 수시로 넘나 드는 사람. 가면성 우울증의 전형적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 마치 우울증을 준비하는 듯한 사람들까지
모두들 각자의 아픔을 그런 식으로 자가치료 증이다. 인생에 아픔은 필요 불가결하다.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다 크고 작은 크기만이 존재할 뿐.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내냐는 것인데. 상처는 곪고 터져서 꼭 상흔을 남긴다. 어떤 식으로든 표식을 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또 그것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감출 수도 없다. 너무 커저버려서.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에 취약해진 걸까? 먹고살기 좋아지고부터라고 누군가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의 이론 때문에 그전에는 먹고사느라 그 감정들을 다 억누르거나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을 여럿을 잡았을 테니까...
이쯤 되니 우울증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을 사는데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우울증이 한번 발병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는 게 힘들어져 버린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절대 편안할 수 없다. 어떤 것에 이미 안 좋은 방향으로 꽂히기 시작하고 그것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자꾸자꾸 수렁에 빠진다. 아직 우울증에 빠지기 전이라면 빨리 선회하여 짚푸라기를 잡고 일어서야 한다. 이미 빠져버린 우울의 늪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희망이 역부족이지만 우울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시점이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다. 이런 작은 희망을 잡고라도.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무력감>은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모든 것이 무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무력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러다 보면 일상이 망가지고 일상이 망가지면 살아갈 자신이 없아지고 이쯤 되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든 해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를 해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아직 시간이라는 무기가 우리에게는 있다. 1초라는 찰나가 모이면 1 분도 되고 하루도 된다. 1초만 버티면 3분을 버틸 수도 하루를 버틸 수도 있다. 한정된 시간이 순간에는 영원에 가까운 가능성을 품기도 한다. 그것에 기대어 힘을 내야 한다. 지나가버린 버려진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남은 겁나는 시간에 겁먹지 말고 지금의 1초 그것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