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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해 Dec 19. 2021

함부로 친절하게

<앵무새 죽이기> 시선 Nr. 2

인종차별도 인종차별이지만 

톰의 잘못이 있다면, 함부로 친절했다는 점이다. 

애초 그 여자애를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할머니에게 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가 할머니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옴팡 죄를 뒤집어쓰게 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권고했다가 소년들에게 맞아 죽은 30대 가장도 있다. 물론, 할머니를 잡아주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을 수도 청소년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강권하다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이 악재가 돌아오는 이 아이러니한 세월에 우리가 살고 있다. 지금이어서 그랬다고 오해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변하는 종이 아니어서 그 옛날 90년 전에도 그와 유사한 사례로 사람이 판단받고 죽어갔다는 소식은...


그렇다 함부로 친절할 일은 아닌 거다.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를 따뜻함과 온정을 꼭꼭 눌러야 하는 거다. 

사람도 봐가면서 도와야 하는 거다. 그래서 전철 안에서 누군가 부당함을 당해도 봐 넘겨야 하는 거다. 


누군가는 죽어나가도 그래야 하는 걸까? 이 양날의 칼에서 우리의 선택은?

아무도 이선택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고민하지 않는다. 아무도...이런 문제를 고민하기엔 현세는 너무 바쁘다. 


요사이 우리는 날씬하고 이쁨, 복근, 동안... 등등의 <외모>와 <돈> 이 두 점을 찍고 모두들 한 방향으로 바쁘게 내달려가고 있다. 외모는 나이와 함께 사그라들고 돈은 있는 자들마저도 목타 하는 끝이 뻔한 이 두 가지 몹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인생들이 행복할리 없다.


이것이 어른들만의 레이스이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요새 어린 사람들은 너무나 영특(?)하여 세상의 이치를 너무나도 빨리 캐치하는 바람에 모든 아이들의 꿈이 연예인이며 건물주이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가 예쁘지 않으면 건물주가 아니면 모두들 일찌감치 패배를 알아버리는 거다. 아직 모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이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기 이전에 알아버리는 패배감은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든다. 해보기도 전에.  


스카웃과 딜 젬같이는 아니더라도 골목의 정서를 알고 있는 낀세대로써 


슬프고 안됐다. 요새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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