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함의 미학

아련함의 Happy ending

by 조용해


나는 건어물녀였다. 학교에서 나름 유명했다. 건어물녀로. 평상시에는 빡쎄게 꾸미고 다니다 시험기간만 되면 삼순이가 되어 삼선 슬리퍼를 끌며 벵글 벵글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똥머리를 하고 시체처럼 도서관을 배회했다. 혹자는 나를 못 알아보기도 했다. 네가 걔 일순 없다고... 그럴수록 좋았다. 어차피 삼순이를 알아봐 봤자 내게 이득 되는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게 그의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그 간극의 차이는 착란을 유발할 수 있었으므로...


하필 그런 날 그를 만났다. 머리를 감긴 했으나 일주일 후에 있는 모임에 찰랑이는 머릿결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에 오일 마사지를 하고 나오는 길이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족히 삼일은 안 감은 머리처럼 보였을 터였다. 서로를 못 볼 수가 없게 마주치고 말았다. 좁은 길에서. 때마침 티셔츠에는 김칫국물이 묻어 있어 주셨고 레깅스는 그날따라 속옷라인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10년 만이었다.


그도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잠깐의 스침이었지만 공기에서 그도 나를 알아봤음을 알 수 있었다. 아는 척을 할까 뭐라고 말을 꺼낼까 그냥 지나갈까를 그 몇 초 사이의 슬로비디오 속에서 여러 번 리플레이했다. 그러느라 정작 그를 지나치고 말았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억울했다. 원래는 왠만큼은 꾸미고 다니는데 이게 본모습은 아닌데... 엄마가 평상시에 동네를 다닐 때도 좀 꾸미고 다니라고 그러다 아는 사람 만나면 개망신이라고... 엄마 말을 안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몇 걸음 지나치다 이대로 그를 보내 버릴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오던 길을 다시 되돌려 그에게 갔다. 웬일인지 그도 내게 다시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상황은 별반 나와 다르지 않았다. 무릎이 십리는 나와 있는 운동복에 목이 젖꼭지 바로 위까지 늘어난 티셔츠 차림이었다. 딱 백수의...


" 나 원래..."

"나 집에서 안..."


서로 찌질한 대화가 오갈 뻔했다. 아니 이미 오갔다.


다행이었다.


안물 안궁... 서로 빵 터진 표정에서... 이후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발길에서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불행하다면 이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진 않는다. 그나 나나.

사람이라는 게 큰 불행이 닥치면 사소한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 따위를 변명하느라 찌질함을 드러내는 일도 없다. 우리의 신경체계가 그렇다. 그렇게 생겨 먹었다. 인간의 의식 회로는 같은 방향으로 돈다.

만약 우리의 생활이 그런대로 유지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린 또 다른 가장무도회를 시작했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보고 느끼하게 눈을 반짝였을 것이다. 미련을 흘리느라고

...


“ 나야... 뭐해?”

“ 발톱 깍어”

“ 그래... 깎으면서 들어. 우리 헤어지자”

“... 그래”



그에게 일종의 미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끝맺음하는데 그런 식의 전화 통보로 하는 게 아니었다. 헤어짐에도 예의라는 것이 있어야 했다. 더구나 그와 나는 선후배 사이었다. 오글거리는 이별 여행까지는 못 가더라도 헤어짐에 대한 일말의 설명도 없이 밑도 끝도 없는 통보로 그렇게 이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부분이 미안함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안 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그가 불행하다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도 그만이 아는 이유로 내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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