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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작법

想像

by 조용해

참 희한한 일이다.


나는 발가벗었을 때만 <생각>이 떠오른다.

뭐라도 걸치고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다분히 작위적이고 인공적이어서 글로 옮기기 낯부끄럽다. 내가 걸치고 있는 것이래 봐야 집에서 입는 100% 면직물 티셔츠와 폭삭한 수면 파자마가 다여서 그닥 가식적일 것도 없는데 말이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면서부터 생각은 하나하나 허울을 벗기 시작한다. 해면에 거품을 내고 있노라면 그 생각이라는 것도 같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하다 샤워기에 물이라도 트는 날엔 쏴하고 생각이 여기저기로 튀기 일수다.


머리를 감으면서 이야기는 구체화되고 이를 닦으면서 단어들은 정제가 된다. 부드러운 해먹으로 몸을 마사지하면 기분 좋게 이야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미끄러진다. 그렇게 한참을 마사지하다 몸에 묻은 거품들을 샤워기로 헹구먼 그제서야 이야기는 마무리를 향해 달린다. 내 몸에 뭔가 걸쳐지는 순간 생각이 사라지는 무수한 경험으로 마음이 바빠진 나는,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글로 옮기려고 재빠르게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으면 내 행동보다 빠른 탬포로 그 순간부터 생각이 사라지려 못내 못내... 마르기 시작한다.


샤워가운을 챙겨 입고 쌩하게 컴퓨터를 켜면 얼마 안 되는 부팅시간에 생각이 후루룩 날아가 버리기 일수다. 그나마 급히 오느라 말리지 못하고 온 머리에 남아있는 물기 만큼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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