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없는 압박
때론 글을 쓸 수 없는 날이 오곤 한다. 시간이 없어서는 아니고 텅 빈 모니터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소심해져 있는 날이 그렇다. 이까짓 전자타자기가 보여주는 두 뼘 남짓의 빈 공간이 나를 누를 만큼 내가 자신 없는 날 그런 날은 왜 남자들이 조루를 겪는지 이해할 것만 같다. 그런 거지. 한없이 자신 없어지는 것.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어떤 확신 비슷한 것으로 작용한 나머지 원래의 기능조차 의심스러운 것. 막상 노트북을 펴고 자판을 두드리면 못할 것도 없는데 말이지. 어차피 그나 나나 배설을 하면 그만인 건데.
또 때로는 내가 쓴 모든 글이 심하게 오글거려 다 지워 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내가 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지워 버리는 행위가 내가 쓴 글 보다 조금은 더 오글 거리는 행위일 거라는 짐작에서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상념들을 오가며 아직 발행하지 않은 글들만 싹 지워 버릴 만큼의 오글거림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 요만큼의 비밀스러움으로 여태껏 나의 글은 그나마 이어져 오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적도 없으면서... 내 컴퓨터의 저장 공간에서 잠자고 있는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두 편의 소설을 바라보며 이것이 과연 소설이 맞기는 한 건지 나로 인해 소설의 새로운 형식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요행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알 수 없는 헛갈림과 주저 속에서 나조차 그것들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날들이 반복되면 정말 한 줌 공기로 사라지고 싶다. 쪽팔려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뭇 진지하게 진퇴양난을 겪고 있는 나를 보는 3인칭은 정말 1인칭이 매우 우스워보이는 순간을 문득문득 목도한다. 평소에는 자알 살다가도 아직은 죽지 않은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면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