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칠보산 트레일러닝
낮 최고기온이 30도가 훌쩍 넘고 습한 날이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걸어도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 숨이 턱턱 막힌다. 요즘은 출근할 때 양산을 챙긴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도 40도까지 올라가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여기저기서 폭염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분명히 지구가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러너는 이런 날씨에도 달려야 한다. 언제부턴가 달리기를 하지 않는 날은 몸이 찌뿌둥하고 기분이 개운치 않다.
오늘도 달려야 하는데 창밖의 하늘을 보니 살을 태울 수도 있을 듯한 태양이 떠있다.
새벽에 달렸어야 하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이거 오늘은 달리기 힘들겠는데.. ’
저녁에는 가족들과 외식을 하기로 해서 달릴 시간이 없다.
어쩌나… 일요일 오후 4시.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더워도 달릴 수 있는 곳. 그래 거기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해발 239미터의 낮은 산이 있다. 칠보산.
최근에 트레일러닝에도 관심이 있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오늘은 산 길을 달려보자!
개심사라고 하는 작은 절 앞 공터에 주차를 한다. 간단히 몸을 풀고 산을 올라간다.
10분 정도 쉬지 않고 올라가면 오늘의 베이스캠프인 개심사갈림길이 나온다.
칠보산 정상까지는 약 2.1킬로미터, 우측 능선을 따라 2킬로미터 정도 내려가면 칠보약수터가 있다.
오늘 코스는 칠보약수터를 찍고 칠보산 정상까지 다시 올라갔다가 베이스캠프로 복귀하는 것이다. (베이스캠프라고 해봐야 큰 나무 뒤에 숨겨둔 보급품이 들어있는 나이키 리저블 백이 전부다.)
총 거리 7킬로미터 정도가 예상된다.
달리기 전에 집에서 챙겨 온 보급품을 확인한다. 물, 이온음료, 에너지젤, 수건.
여름철 달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분 공급이다. 3~4킬로미터마다 한 번씩 급수를 해줘야 한다. 자, 이제 산을 달려본다.
새소리를 들으며 폭신한 흙길을 달리다
산에서 달릴 때는 특별히 페이스는 신경 쓰지 않는다.(신경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니)
최대한 힘을 빼고 착지에 신경 써서 달린다. 그리고 계단이나 가파른 언덕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간다.
무조건 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트레일러닝화를 신었다. 접지력이 좋고 발목을 잘 잡아줘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시작하고 약한 오르막이 150미터 정도 이어진다. 이후 평탄하고 폭신한 흙길이 나온다. 착지를 할 때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적다.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산 냄새가 좋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음악을 듣지 않고 새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선가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느닷없이 근처 나무에서 까마귀가 휙하며 날아가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다. 까마귀도 놀랐을 것이다. 산에서 달리는 인간이 많지는 않을 테니.
달리는 내내 그늘이다. 거의 전 구간이 그늘이다. 바깥 기온보다 3~4도 정도는 낮은 듯하다. 여름에도 산에서는 확실히 달릴만하다.
‘이래서 여름에는 산을 뛰어야 하는구나’
500미터 정도를 달리니 갈림길이 나온다. 칠보약수터 방향으로 가는 중에 특이한 바위가 있다.
아주 크고 가운데 일자로 금이 그어 저 있다. 신기하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거 같지는 않고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궁금해진다.
이어서 내리막이 계속된다. 올라올 때가 걱정된다. 드디어 약수터가 보인다. 시원하게 약수를 마신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간다. 이제부터 고난 시작이다. 보폭을 최대한 줄이고 천천히 올라간다. 심박이 금세 150대를 찍는다. 허벅지가 비명을 지른다. 안전하게 심박을 올리는 훈련이 되는 거다.
‘내가 무슨 국가대표라고 이렇게 한 여름에 산을 오르는 훈련을 하나’ 싶다. 지나가는 중년의 부부가 힐끗 보는 것이 느껴진다.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 ‘성취감’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 대체로 기록 향상을 통한 성취감을 중시한다. 그 과정에서 심폐능력과 근육의 성장을 보는 것이 즐겁다. 최근에 난생처음 러닝 타이즈를 입어봤다. 두꺼워진 허벅지에 놀랐다. 살면서 이렇게 탄탄한 허벅지를 경험한 적이 없다.
언제부턴가 트랙을 달릴 때 발을 땅에 딛는 순간 앞쪽 허벅지가 단단하게 슬개골을 잡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한 안정감은 속도를 좀 더 올려도 좋다는 신호다. 이러한 경험은 허벅지와 둔근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좋은 훈련이 바로 산을 달리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훈련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강화시켜 주며 다양한 지형을 달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발목 강화에 도움이 된다.
아직은 좀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기록은 퇴보하게 될 것이고 다른 형태로 달리기를 즐기게 될 것이다. 가급적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멋진 풍경을 보며 달리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체적인 능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싶다.
어릴 적 농구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작고 마른 체형인 나는 선수가 될 수 없었다.
우연히 마흔이 넘어 내 체형이 재능이 될 수 있는 스포츠를 만났다.
더위를 피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3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금 낯간지럽지만 열정이라고 하고 싶다.
칠보산 정상
칠보약수터에서 출발지까지 20분 정도를 쉬지 않고 올라간다. 땀으로 세수를 한다.
‘역시 만만치 않군’
급수를 하고 에너지젤을 하나 먹는다. 이번에는 칠보산 정상을 향해서 달린다. 정상까지 거리는 약 2킬로미터. 계단이 훨씬 많은 코스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달려본다.
로드에서 달리는 것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자연을 달리는 매력이 있다.
어느새 정상에 올라왔다.
비록 높지 않지만 정상의 맛은 있다.
요즘 자주 떠오르는 말이 있다.
'건강하기 위해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만이 마라톤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