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나 했을 뿐인데 정말 인생이 바뀌고 있네요
요즘 저녁에 집 앞 수변 공원에 나가면 달리는 사람이 작년에 비해 정말 많아졌다. 혼자달리는 사람, 러닝크루로 보이는 젊은 러너들, 이제 술을 끊고 달리기로 살을 빼겠다는 결심이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 아내에게 달리는 방법을 알려주며 함께 달리는 부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달린다. 러닝 인구 1,000만 시대라는 이야기가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사람들은 힘든 달리기를 왜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달리는가.
달리는 시간 나와 마주한다.
달리는 동안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차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동안 대체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고 한다.
나는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새벽에 달릴 때는 먼저 가볍게 몸을 푼 후 걷는 속도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무릎 관절과 발목 상태를 체크하고 이상이 없으면 아주 조금씩 페이스를 올린다.
심박이 안정을 찾고 리듬이 생기면 이후에는 마치 고속도로 2차선을 정속 주행하는 자동차처럼 일정하게 달린다. 그즈음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체로 그날의 주요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일종의 이미지트레이닝이다. 그림이 구체적으로 잘 그려지면 실제로 현장에서도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된다.
조금 까다로운 업무의 경우 책상에 앉아서 검토하는 것보다 달리면서 생각할 때 좀 더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달릴 때 뇌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어서 좋은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5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면 더 이상 생각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 지점부터는 뇌가 육체의 움직임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일정한 리듬의 호흡과 경쾌한 발소리만 남는다.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달리기를 하면 생각이 없어져서 좋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하다. 호흡과 내 존재에만 집중한다. 이때만큼은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주는 휴식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 새벽에 한강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러 간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아름다운 한강을 보며 달리면 온전히 삶을 누리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여름철에는 달리기를 실컷 하고 얼음잔에 콜라를 부어 한잔 마시면 콜라를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리고 대망의 한강라면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장거리를 달린 날은 집에서 반신욕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마시면서 여유를 만끽한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달리기는 나에게 주는 휴식이다. 그렇게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주말 아침을 보낸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
성취감은 보너스
꾸준히 달리면 자연스럽게 달리기 실력이 향상된다. 처음에는 1킬로미터도 달리지 못하는 사람에서 조금씩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 어느새 5킬로미터, 그리고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경험을 맛본 사람은 달리기를 지속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라톤 대회에 관심이 생긴다.
용기를 내서 대회에 참가하고 힘겹게 완주를 하게 되면 그 성취감은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희열을 맛보게 해 준다.
마라톤은 스포츠 중에서 정직한 보상을 해주는 종목이다. 엘리트 선수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다른 누군가와 승패를 겨루지 않는다. 내가 목표한 거리를 목표한 속도로 달리면 되는 것이다. 그게 전부이다. 물론 현재 나의 실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성취해 나가면서 마치 게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듯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건강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삶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 새벽 달리기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 전날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피하고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회식도 있고 원치 않는 자리에도 나가야 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원하는 일상의 리듬을 지속하기 어렵다. 결단이 필요했다. 거절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처음에 힘들었지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술로 친목을 도모하던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일부 사람들 눈에는 달리기에 미친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즐거움도 물론 좋지만 트랙에서 힘차게 달릴 때 더 행복했다. 그리고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시간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이를테면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다.
매일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나도 뭔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글도 꾸준히 쓰면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적당하게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마라톤에서 배웠다.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하면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나에겐 그것이 읽고 쓰고 달리는 일이다.
인생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지만 다채로운 삶을 살고 싶다. 달리기는 그 밑바탕이 되는 체력을 담당해 줄 것이다.
멋지게 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