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영토수호마라톤

오버페이스의 최후

by 달려보자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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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7시. 여의도 한강공원에 나왔다. 누가 봐도 ‘앗! ‘ 하고 탄성이 나올 법한 강렬한 형광 오렌지색 군단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마치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응원단 같기도 하다. 사실 그들은 마라톤 대회기념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이다. 사이버영토수호마라톤. 낯선 대회지만 올해로 17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요즘에는 러닝붐에 맞춰 참신한 마라톤 대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추억의 예능 무한도전 멤버가 함께하는 ‘무한도전 RUN’부터 마블 캐릭터를 활용한 ‘마블런’, 지구 환경 수호를 지향하는 어스마라톤까지 개성 있는 대회가 생겨나고 있다. 러너로서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주말마다 교통통제로 불편을 겪는 서울 시민께는 죄송할 따름이다.


4월 경기마라톤 이후 오랜만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혼자 달리기에 지쳐 충동적으로 대회를 신청했다.

평소 혼자 달리는 것에 익숙하고 또 좋아하지만 풀코스 마라톤을 대비한 장거리 훈련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LSD(Long Slow Distance)라고 하는 장거리 훈련은 짧게는 20킬로미터에서 길게는 4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대회 페이스 보다 1분 정도 느리게 달리는 훈련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필요한 지구력과 심폐기능을 키워 주는 훈련으로 걷지 않고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대개 대회 1달 전에는 장거리 훈련을 마무리해야 대회 당일에 몸에 지장이 없다.

8월 초 24킬로미터를 시작으로 2주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 10월 초에 35킬로미터로 장거리 훈련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봄 대회를 준비하던 지난겨울에는 6번의 장거리 훈련을 했지만 여름에는 장거리 훈련이 정말 힘들다. 당연히 덥기 때문이다.

훈련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400미터 트랙에서 진행하고 있다.

4 레인까지만 있는 비교적 작은 체육공원이지만 스탠드가 있어 훈련 도중 급수가 편하고 화장실도 가까워서 훈련 장소로 최적이다. 물론 한강처럼 풍경이 좋은 코스를 달리면 더 좋겠지만 여름에 혼자서 급수를 챙기면서 달리기에는 트랙이 안전하다.

대신 끝없는 지루함과 중간에 멈추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한강처럼 한 방향으로 달린 후 반환하는 코스는 어찌 됐든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훈련의 성공 확률이 높다. 반면 트랙에서는 당장이라도 멈추고 집으로 갈 수 있다. 포기하기 좋은 조건이다. 멈추면 종료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트랙에서는 페이스가 비슷한 동료가 큰 힘이 되지만 아쉽게도 난 혼자다.

훈련은 주로 일요일 새벽에 한다. 아직 날이 어둑한 5시 정도부터 시작하는데 6시쯤 되면 지역 러닝 크루원 20명 정도가 트랙에 나타난다. 이번 여름에 3번 정도 마주쳤다. 그들도 나를 알아본다. 인사는 하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느낀다. 잠시나마 크루에 가입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가 편하다.

400미터 트랙 80바퀴를 3시간 동안 입을 꾹 닫고 달리는 일은 지겹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와,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희한하게도 뭔가에 꽂히면 별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중요치 않다. 때론 그냥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마라톤에서 걷지 않으려면 장거리 훈련을 해야 한다.‘처럼.

평균적으로 한 바퀴를 2분 초반대의 속도로 달린다. 2분마다 같은 지점을 돌면서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꾸준히 상승하는 심박과 뜨거워지는 날씨뿐이다.

다행히 목표한 거리를 달리고 나면 역시나 ‘또 잘도 해냈구나. 대단하다.‘ 하며 만족한다. 하지만 어디 가서 자랑할 수는 없다. 주변에서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혀를 차며 ‘적당히 해라, 얼굴살 빠진 거 봐라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봄보다 팔자주름이 조금 깊어진 것을.

11월 말에 마라톤 시즌이 끝나면 체중을 조금 불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구구절절 말이 많았지만 결국 혼자 달리기도 지겹고 해서 계획에도 없던 대회장에 나왔다.

하프코스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확인하고 싶었다. 7, 8월에 정말 열심히 달렸기 때문이다. 특히 8월에는 295킬로미터를 달렸다. 300킬로미터를 채우고 싶었지만 여름휴가도 다녀오고 해서 막판 뒷심이 부족했다. 그래도 하루에 10킬로미터를 달리기 위해 나름 착실하게 달렸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쳤다.

‘자, 오늘은 몇 분 페이스로 달려볼까.’

‘가볍게 4분 45초로 달려볼까?’

이때 까지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죽음의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오버페이스의 최후

기온은 24도. 습도 80%. 습도만 빼면 9월 들어 가장 시원하다. 구름이 많고 흐린 날씨다. 하지만 언제 날씨가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한강을 많이 달려봐서 알고 있다. 흐리다가도 느닷없이 강렬한 태양이 내릴 쬘지 모른다.

구름들 빈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보인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코스는 단순하다. 여의도 한강공원 자전거도로를 달려서 검단대교 부근에서 반환해서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면 된다. 전체적으로 평지로 어렵지 않은 코스다. 다만 자전거를 별도로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만 유의하면 된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간다. 주로가 좁기 때문에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조금 더 앞에서 출발했어도 괜찮았겠네’라고 생각했다. 500미터를 지나갈 무렵 계획한 페이스에 도달했다. 4분 44초 페이스.

‘됐어, 이제 이 속도로 계속 달린다. 앞이 뻥 뚫렸다. ‘좋았어!’

양화대교 부근 앞에 검은색 쇼츠에 검은색 싱글렛을 입은 구릿빛의 여자 러너가 보인다. 페이스가 일정하고 안정적인 자세다. 딱 봐도 실력자다.

’ 잠시 같이 달려야겠다.‘ 뒤에 붙어서 200미터 정도를 달린다. 이대로 반환점까지 달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를 본다. 4분 55초.

‘음, 이건 좀 곤란한데.’ 아쉽지만 속도를 내서 앞질러 나간다.

출전했던 모든 대회에서 중에서 가장 빠른 초반 페이스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100미터 정도 앞에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풍선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20, 30명 정도의 선수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다. 따라 잡기는 무리다.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달린다.

하프 코스 개인 최고기록은 1시간 37분. 편균 페이스 4분 38초. 시원한 4월 중순 대회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날씨에서 그 페이스는 무리다.

5킬로미터 정도를 달려 성산대교 부근 급수대에서 처음 물을 마신다. 우측으로 한강이 넓게 펼쳐져 있다. 시야가 확 트인다.

이제 본격적인 레이스가 이어진다. 앞에 30대 초반과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러너가 함께 달리고 있다.

주로가 좁아 그들 뒤에 붙었다. 평균 페이스 4분 45초. 두 명을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올리는 순간 오른쪽 종아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나타났다.

‘엇! 뭐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쥐가 살짝 올라온 것이다. 2년간 달리면서 종아리에 쥐가 난 적은 없다. 마라톤을 달리면서 파스 한 번 뿌린 적이 없다. 근육 경련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부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머리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7킬로미터 지점. 평균페이스 4분 50초. 오른쪽 종아리근육에 약한 경련. 무리하면 쥐가 올 것이고 완주도 힘들고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직 가을 마라톤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아쉽지만 걷지만 말고 결승선에 들어가자. 이것이 최선이다.라고 마음을 정했다.

앞서 달리던 30대 러너가 ‘먼저 갑니다. 천천히 오세요.‘ 하듯 저 멀리 달려 나간다.

‘쫓아가면 완주를 못 할 수도 있다.‘

‘완주를 못 할 수도 있다.’ 메아리처럼 귓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 힘껏 달리지도 않았단 말이다. ‘일단 반환점까지 살살 달려보자.’ 그때 다시 한번 반전을 노려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스의 절반을 지났지만 종아리는 조금이라도 강하게 달리면 언제든 전기 충격을 줄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그래 오늘 레이스에서 기록은 포기하자.’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반환점을 돌아 나갈 때 태양은 8월로 돌아간 듯 뜨거웠다. 다리를 굴릴 때마다 허벅지가 뜨겁다. 페이스는 자연스럽게 더 떨어진다. 5분 20초. 이제 한강 풍경이고 뭐고 낭만이고 사라진 지 오래다. 빨리 레이스를 끝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지난해 첫 풀코스가 생각났다. 그때가 에너지 고갈이었다면 오늘은 근육 경련이다.

오늘이 출전했던 모든 하프마라톤 중에서 가장 힘든 레이스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아까 먼저 달려 나갔던 30대 러너가 힘들게 달리고 있다. ‘역시 모두에게 힘든 레이스구나’ 하며 달린다. 다행히 더 이상의 경련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거리는 3킬로미터. 결국 나는 걷지 않았다. 미션을 실패한 태양이 슬그머니 구름 뒤로 사라졌다.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기운이 나기 시작한다. 사진작가님들이 사진을 찍어주신다. 단독 샷을 몇 번 받았다.

‘음, 그래도 사진은 잘 나오겠네.’

용케도 걷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완주 메달이고 뭐고 물만 마시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봤다.

'지독히도 힘들었다.'

오는 지하철에서 레이스를 복기했다. 근육 경련은 훈련부족과 초반 오버페이스가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마라톤은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또 눌러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어렵다. 20대 시절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급함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이제 가을 마라톤이 시작되고 있다.

값진 경험을 했다. 설욕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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