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 대기실의 빈자리

임신이 됐을까? 난임병원 피검사 하러 가는 날

by 유담

회사에는 연차를 냈다. 병원에서 정해주는 일자에 맞춰 방문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남은 성냥의 개수를 세듯, 손가락을 접어 남은 연차 일수를 헤아려본다. 기차역이 집에서 가까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오늘 꼭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야 하나?'


기차역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갈며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곧, “임신이 아니신 것 같아도 피검사로 확실히 확인해야 지원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라는 병원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이 떠올라 고개를 젓는다.

막상 기차에 오르자 어릴 적 설렘이 잠시나마 되살아나 괜스레 창밖을 본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아침 일찍 남편이

“기차에선 달걀이지!” 하며 챙겨준 달걀을 하나 까먹고 책을 꺼내든다. 왕복 네 시간. 그래도 오래간만에 주어진 여유라며 스스로를 북돋운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렇게 많은 난임 부부가 있구나 싶어,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몇 번 와본 터라 서툴지 않게 환자 카드를 찍고, 익숙하게 5과 앞으로 가 대기한다. 난임 병원의 채혈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기차에서 내린 뒤 달려오느라 차오른 숨을 고르며 책을 펼친다. 안내 선생님이 채혈 층을 알려주어 수납을 하고, 층을 바꿔 내려간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한 분이 있었고, 내 차례에 채혈을 마친 뒤 5분간 지혈을 하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채혈 마감 시간이 임박해 두세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 짧은 5분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왜인지 모르게 모두 슬퍼 보인다. 아마 나처럼 이미 결과를 알고 온 사람들이 있어서일까. 그중 한 분의 얼굴엔 자그마한 기대감 같은 것이 비쳤다.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으신 건가. 덩달아 내 마음도 설레어온다. '임신이 되셨으면 좋겠다…' 속으로 빌며 지혈을 끝낸다.


대기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의 가루들이 공중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로 작은 희망의 빛이 반짝이는 이상한 공간이기도 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지원을 받기 위한 당연한 절차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내 마음을 설득하지는 못했는지 은근한 불편함이 밀려온다.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남은 휴가 일수를 세어본다.


내 차례가 되어, 불임신 확인 결과를 면담으로 듣는다. 이어 “다음번 체외수정은 보름간 다섯 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머릿속에 남겨둔 연차 일수를 떠올리며 “주말에 오는 건 안 되나요?”라고 묻자, 주사나 약으로 맞힐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주말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다음 예약을 잡았다. 다다음 주 월요일, 자궁에 있는 용종을 떼어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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