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4
좋아하는 돈가스 가게가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재료가 소진되면 바로 문을 닫는 맛집이라 늘 웨이팅을 각오하고 찾는 곳인데, 오늘 점심도 어김없이 만석이었다. 주문을 먼저 넣어 놓고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건너편으로 우리집이 보였다. 중간층의 가장 끝 집. 낮의 해가 반사되는 창문을 보고 있자니 작년 이맘때 겨우 이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이사할 집을 찾을 때만 해도 이렇게 멀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면 곧잘 멀미를 하니 되도록 전철역이 가까운 곳이길 바랐지만, 일단은 깡통 전세를 피하고 예산을 맞추는 게 더 중요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이 분야에선 통하지 않는 걸까. 부동산을 아무리 돌아도 주변엔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었다.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펄펄 눈은 내리고. 그렇게 급하게 계약한 집이 바로 이곳이었다.
단출한 이삿짐을 꾸리며, 나는 낙오자가 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너무 멀리 떠나게 됐고, 예산도 결국 지키지 못했으니까. 나와서 산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집이 그리웠다.
다행히 나의 이사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걱정하던 일들은 막상 부딪혀보니 별 게 아니었고, 이 동네는 살아 보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달리기 좋은 공원, 그보다 가까운 영화관, 무엇보다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돈가스집.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이제 와 보면 이사를 앞두고 잠 못 이루던 밤들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덕에 걱정만 부풀리는 일의 무소용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앞으로를 보자, 그렇게 다시 다짐한다. 직접 겪기 전엔 모른다. 어떤 것이나 양면성이 있고, 내 관점도 기호도 영원하지 않다.
내년에는 새로 지어지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줄곧 떨어지기만 해서 기대를 놓고 있었는데, 연말에 극적으로 당첨 문자를 받았다. 이전 같았으면 보따리 풀듯 걱정거리를 꺼냈겠지만, 이번에는 새 결심을 따르기로 한다. 이곳에서의 1년을 알차게 보내기로. 돈가스도 많이 먹고, 호수공원도 자주 달려야지.
쓰면서 보니 바로 여기, 되고 싶은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