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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03.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5)

두려움에는 힘이 있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십여 리 길에 보이는 묘지만 30개가 훌쩍 넘는다. 때때로 무서운 상상이 시작되면 묘지 옆을 지날 때마다 괜스레 등줄기가 오싹한다. 오늘은 제사가 있는 날, 바로 큰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집에 계시지만 큰아버지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신다. 상가에 다녀왔기 때문에 삼칠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묘지에 대한 공포는 매장된 시신이 결국 흙으로 돌아가 다시 생명의 일부로 돌아오는 순환의 과정이라는데 생각에 이르러서야 극복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름 모를 무덤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동족의 주검에 공포를 느끼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인간은 어떤 이유로 동족의 주검에 두려움을 갖게 된 걸까? 어째서 상가에 다녀온 사람은 자신의 제사나 경사에 가지 않고, 결혼을 앞둔 사람은 다른 사람 상가나 심지어 결혼식장에 가는 것을 부정 탄다며 꺼리게 했을까?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치고 삼칠일 간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게 했을까? 이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미생물학과 위생학을 배우며 해소될 수 있었다. 인류는 모여 살며 수많은 전염병을 겪었을 터, 주검을 멀리하고 상가에 다녀온 후 삼칠일 간 근신하며 몸의 변화를 살펴 망자가 걸렸을 감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경험에서 나온 선조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저 미신이 아니라 경계할 것을 공포심에 담아 후대에 전한 것일 것이다. COVID-19가 창궐하던 시절 이러한 선조의 지혜는 고스란히 생활 방역의 근간이 되었다.

    따스한 봄 햇살과 대비되게 그다지 간식거리가 별로 없는 이른 봄철에 아이들의 간식은 찔레순 꺾어 먹거나 참꽃(진달래)을 따 먹는 것이다. 봄철이 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철쭉밭에 가지 마라 문둥이가 와서 간 파먹는다며 겁을 주고, 수년 전에 뉘 집 아이가 죽어서 상엿집 뒤 켠 어딘가에 묻었다고 했다. 철이 든 후에야 철쭉에는 독이 있고, 세 남매가 철쭉을 먹었고, 이북에서 넘어와 혼자 살고 계신 노파의 말씀대로 밤새 젖은 수건으로 입술에 물을 묻혀주었지만 가장 어렸던 사내아이는 죽었고, 두 아이는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류는 잘 모르는 존재나 이해되지 않는 위험에 공포를 심어 피하게 하고자 해온 듯하다. 독이 있다거나, 먹으면 죽는다는 말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오용할 수 있지만, 적절한 공포는 때때로 효과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철쭉 밭에 가지 마라 문둥병(한센병) 환자가 와서 간을 파먹는다'라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예로부터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철쭉은 먹지 못하는 꽃이라 개꽃으로 불렸다. 이 공포의 비밀을 안 것은 석청이라 하여 티베트의 고승들이 명상을 위해 먹는다는 꿀이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이를 먹은 사람들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사회문제가 되면 서다. 석청(Mad honey)은 그레이아노톡신(grayanotoxin)을 함유하는 진달래와 식물의 꽃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이 오염된 위험한 꿀이라는 것을 알면서다. 철쭉에는 그레이아노톡신이라는 신경독이 들어 있으며,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에는 만병초, 마취목 등도 이 신경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물, 꿀, 혈액 등 다양한 시료에서 분석법을 확립하였다. 소문 끝에 찾아낸 십수 년 전 변사사건 유품으로 들어와 보관 중이던 꿀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을 확인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첨단장비 도입,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과거의 미상 중독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레이아노톡신의 중독은 이 독소를 함유하는 진달랫과 식물이 우점종인 지역에서는 흔한 중독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철쭉이 전체 봄꽃 중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고 벌이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는 이른 봄에 피는 탓에 국내산 꿀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이 검출된 적이 없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흔하다. 그레이아노톡신과 석청의 독성동태에 대한 논문을 보고 국내 연수를 희망하여 찾아왔던 응급의학과 의사인 닥터 알리가 중독환자의 생체시료와 먹었던 꿀 50세트를 가지고 공동연구차 찾아오기와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다. 투르키예에서는 연간 수천 명이 중독되고 수백 명이 병원 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프랑스령의 한 섬에서 있던 주술 과정에 그레이아노톡신을 함유한 식물을 사용한 정황이 있는 변사자의 조직 시료를 보내와 분석하였다. 사건 6개월 후에 포르말린으로 고정한 조직이어서 그레이아노톡신 중독이 검출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도 진달래과 식물에 의한 그레이아노톡신은 가끔 발생한다. 2015년 만병초 담금주를 나눠 마신 배드민턴 동호회 7명의 중독이 있었다. 만병초, 이름이 왠지 만병에 효험이 있는 듯 느껴지지만 강력한 신경독을 함유한 식물이다.

    그레이아노톡신은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 복어독)과 같이 VGSC(Voltage gated sodium channel)에 작용한다. 테트로도톡신이 VGSC가 열리는 것을 억제하여 신경전도를 차단하는 반면, 그레이아노톡신은 열려있는 VGSC가 닫히는 것을 방해하여 작용한다. 타깃 수용체에 친화도와도 관련되지만, 테트로도톡신은 신경 전도를 즉각적으로 차단하는 반면, 그레이아노톡신은 신경 전도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이런 기전적 차이는 이 두 물질 간의 쥐에 대한 급성독성 차이가 대략 10배에 달하며, 그레이아노톡신이 비교적 치료가 상대적으로 잘 되지만, 테트로도톡신의 사망률이 높은 하나의 요인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도 VGSC에 작용하는 신경독은 화살촉 개구리 독인 batrachotoxin, 패류의 독소인 saxitoxin, brevetoxin 등이 있다.

    어느 날 응급의학과 교수님과 진달래를 먹은 후 그레이아노톡신 중독 증상을 보였다는 임상 논문으로 의견을 교환하던 중 진달래가 확실하다는 말씀에 다시 한번 해보기로 했다. 한참 그레이아노톡신을 연구할 당시 분명 나오지 않았었던 터라 별 의심이 없었고 연구원 주변 산에서 채취한 진달래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간 해외 출장을 간 사이 바지런한 후배는 실험에 사용한 개체 수가 제한적이라며 져가는 진달래의 끝자락을 잡으러 북으로 북으로 강화도까지 차를 몰아 진달래 채집에 나섰고, 채취해 온 진달래 개체 절반 정도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이 검출되었다. 어렸을 적 시큼한 맛에도 곧잘 따 먹던 진달래가! 그저 나는 운이 좋았구나. 

    올봄 후배는 바쁜 와중에 전국 각지를 돌며 진달래 채집에 나섰다. 유전자와 협업해 진달래가 그레이아노톡신을 가지는 빈도와 분포 그리고 가능하다면 진달래가 그레이아노톡신을 가지게 된 사연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연구과제가 채택돼서다. 응원해주고 싶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진달래도 중독될 수 있음을 알려야겠다.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어 먹거나 술을 담그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으니 말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지만 그 안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사람은 자연에서 온 것은 안전하고 건강에 좋다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잘 모르는 것에는 적당한 두려움을 가지자. 그것이 과도하지만 않다면 두려움에는 힘이 있다. 은퇴인구 증가로 봄나물, 가을 버섯 채취 인구가 늘어나면서 어렸을 때 기억에 의존해 독초나 독버섯을 채취하거나, 삶거나 하지 않고 생식하여 중독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또 고령인구 증가로 시력과 판단력 저하로 중독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채집본능보다 적당한 두려움을 갖자. 두려움에는 위험을 회피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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