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은 다르다
부모님 묘소에도 들를 겸, 친척들 얼굴도 볼 겸 고향 마을로으로 향한다. 감자 캐낸 자리에 심은 콩도, 옥수수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심은 배추도 어느 정도 자랐다. 여름은 농부에게 바쁜 계절이지만, 일이 주 정도 나름 여유가 있는 시기이니 커피라도 한잔 할 시간이 있으리라. 시골의 풍경은 계절의 변화를 빼고 나면 바뀌는 것이 없다. 날씨에 따라 일의 순서가 조금씩 바뀔 뿐 계절에 맞는 일을 하는 단조롭지만 풍요로워 보이는 생활은 무더운 여름에도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면서도 때로 부럽다. 마당 한편에 사는 개는 주인이 집에 있으면 사람이 와도 짖지 않고 오늘처럼 무더운 날엔 나와보지 않을 만큼 영민하다. 그런 개가 짖지 않아 집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지만 아무도 없다. 개는 보이질 않고 목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얼마 후 돌아온 형님 부부의 낯빛이 어둡다. 힘든 농사일에도 늘 밝으신 모습이셨기에 무슨 일 있느냐 물었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형님의 눈가가 촉촉하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개가 안 보이던데 팔았냐 물으시니 아침에 죽었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개를 묻어주고 오는 길이라며 형수는 개는 부검 안 되냐고 물어 오신다. 십수 년 전망하더라도 복날 전쯤 키우던 개를 팔곤 했고 더 전에는 마을에 다른 개와 바꿔 보신용으로 드시기도 하셨던 터라 슬퍼하시는 것이 의아했지만, 경찰세 신고하면 개 부검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직업 특성상 집에 없어진 건 없는지, 다른 피해는 없는지 물었다. 없어진 것도 누가 집에 들어온 흔적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개가 죽어 있었단다. 별일 아니라 생각해 개 죽은 걸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시나라고 말하니, 옛날에야 먹을 것이 없으니 그랬던 것이고, 지금은 키우던 개를 팔지도 않으신단다. 형님 부부의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세상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과 이제 형님도 나이가 드셨다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환갑이시다. 키우는 개로 인해 이웃과 불화가 있을 만한 마을도 아니고, 도난 물품도 없으니 신고하거나 부검까지 할 일은 아니이다. 길고양이나 유기견이 죽은 경우에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질의하시고 일 년 넘게 감정인을 괴롭히는 경우도 성심껏 답변하는데, 아직 젊은 개가 죽었으니 뭔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최근에 무엇을 주로 먹였으며, 어제저녁은 잘 먹었는지 확인했다. 늘 먹이던 걸 먹였으며, 아는 빵집 사장님이 유통기한에 이른 빵을 가끔 가져와 냉동실에 얼려 놓았는데 먹는 사람이 없어 개에게 주었다고 했다. 빵은 자주 주었고, 죽기 전날 개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고 했다. 혹시 빵 중에 초콜릿 묻은 빵이 있었는지 물었다. 도넛 형태에 바깥에 초콜릿이 묻은 빵이었다고 했다.
정확한 사인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혈중 메틸잔틴류 1) 농도에 대해 평가를 해보아야 하지만 정황은 초콜릿을 가리키고 있다. 잠시 슬퍼하시는 형님 부부에게 진실을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죄책감을 가지실 수도 있지만, 의구심을 가지시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말씀드렸다.
‘개는 초콜릿 때문에 죽은 것 같다.’
물질의 상호작용은 종 사이에 차이를 보인다. 근원 종일수록 유사한 작용을 나타내지만, 대사 능력, 감수성이 다르고 심지어 장내 세균총의 차이, 위장관 길이의 차이로도 영향받는다. 사람의 기호식품, 초콜릿, 커피 등 메틸잔틴류의 성분이든 식품은 개나 고양이 등 육식동물에는 독성이 크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도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있지만, 개나 고양이는 메틸잔틴류를 잘 대사 시키지 못하며, 이들 물질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 더 낮은 복용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 개가 메틸잔틴류에 과다 노출되면, 소변이 증가하고, 탈수, 메스꺼움, 구토, 설사, 과잉행동, 부정맥, 내출혈, 운동실조, 떨림, 발작, 쇠약, 혼수, 청색증, 고혈압, 고열 등이 나타나며 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적 메틸잔틴류 중 하나인 테오브로민은 20 mg/kg에서는 구토, 설사, 수분 결핍에 의한 갈증이 나타날 수 있고, 40~50 mg/kg에서는 심장독성이 나타나며, 60 mg/kg 이상에서는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초콜릿이나 커피에는 많은 종류의 메틸잔틴류 성분이 포함되어 있고, 그 함유량도 제품마다 달라 어느 정도 양의 초콜릿이나 커피를 먹어야 하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식품에 개나 고양이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파, 양파, 마늘 등 백합과 Allium 속 (부추 속) 식물에 함유된 n-propyl disufide가 개나 고양이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독성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물질은 적혈구의 gluose-6-phosphate dehydrogenase를 억제하여 궁극적으로 적혈구에 풍부한 산소로부터 적혈구를 보호하는 기전을 약화한다. 이는 메트헤모글로빈혈증 2)을 일으켜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져 빈혈을 일으키며 심각한 경우 죽을 수 있다. 자일리톨은 개에서는 심각한 간독성을 유발하지만, 고양이에는 큰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에탄올(술)은 사람보다 개와 고양이에서 훨씬 독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나 고양이에게 술을 먹이는 행위는 동물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초식동물은 발효된 과일 등을 먹어야 하므로 알코올에 대한 대사 능력을 갖추고 적응해 왔지만 육식동물 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포도, 건포도, 아보카도, 마카다미아가 개와 고양이에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아보카도는 개, 고양이 이외에 말, 소, 염소, 쥐, 새, 토끼 등에도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질과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의 종류는 종마다 강도와 중류가 다르다 독성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종차(species difference)라 부른다. 생명체는 하나의 화학공장으로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든다. 이 물질들은 에너지원이나 형태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양한 역할을 한다.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다양한 물질을 만들며, 이들 물질로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기도 한다. 동물이 이러한 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외래성 물질에 노출을 감수하여야 하는데,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서 식물은 독성물질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쪽으로, 동물은 이런 독성물질로부터 보호하는 기전을 발전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육식동물보다 초식동물은 진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식물 유래의 독에 적응하기 위해 독을 회피하거나 대사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습득하며 종을 유지해 왔다. 초식동물은 장의 융모세포에 청산 대사 효소를 증가시켜, 많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청산배당체 3)에 적응했으며, 복어는 테트로도톡신에 적응해 자신이 먹는 조류가 가지고 있는 독을 축적해 자신을 보호하도록 적응했고, 식물은 특정 물질을 만들어지는 것을 유지하여 일정 부분 포식자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충분히 종의 유지에 유리한 조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반려 인구가 증가하며 자신이 기르는 반려동물에게 함부로 사람이 먹는 것을 특히, 식물에서 유래한 것을 주는 행위는 조심해야 한다. 사람과 개는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같지 않다. 그 차이는 때때로 질병 수준을 넘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1) 메틸잔틴류(methylxanthines)는 커피, 카카오 등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로 이에 속하는 물질은 카페인, 테오브로민, 테오필린 등이 있다.
2) 메트헤모글로빈혈증(methemoglobinemia): 헤모글로빈이 +3가로 전환된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현상은 아질산나트륨(피클링솔트) 중독이나 몇몇 약물의 과다 복용에서도 나타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2가 철일 때 산소 운반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적혈구에는 산소 농도가 높아 +2가 철은 +3가 철로 전환되며 이를 다시 +2가로 되돌리는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glucose-6- phosphate dehydrogenase는 이 체계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효소 중 하나이다.
3) 청산배당체: 당과 청산(Cyanide)이 결합한 형태로 남미 지역에서 탄수화물 공급원인 casava, 사과 씨, 복숭아씨, 살구씨, 매실, 아몬드 등 다양한 식물에 함유되어 있으며, 곤충이나, 동물에게는 독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