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30' [.]낙과

불현듯

by DHeath

열매가 언제부터 맺힌 건지,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름 모를 나무에 열린 것이어서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도톰한 잎 사이에 돋아나는 새순인 줄 알았다가
조금씩 자라 둥그런 모양을 잡고 불그스름하게 익어가면서 내 세계에 존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라나는 열매를 일상 속에서 찾아보는 일은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주위에 다가서면 달곰한 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고, 슬쩍 건드려보면 표면의 솜털의 부드러움과 말캉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제 자리에 곧잘 매달려 있으면서, 새나 벌레 같은 다른 동물들에게 상하는 일도 없어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열매는 불현듯 추락했다
누굴 탓하지도 못하고 나는 한참을 서서 열매의 최후를 지켜봤다
낙하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충분히 아름다웠을까
날씨는 화창했을까 같은 질문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꽃이었던 열매의 시절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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