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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Feb 04. 2022

지하철은 내 슬픔을 싣고 달렸다

나는 버스를 타고 20분만 가면 바다가 보이는 경상남도의 끝자락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니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을지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3년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로 나는 ‘서울살이’라는 정신없는 삶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생활하기 전에는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마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무거운 철덩어리가 수많은 것들을 담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네모난 철덩어리가 여러 사람들, 그들의 무거운 고민과 감정들을 싣고 달리고 있었다.


지하철은 특정 바운더리 안에서만 살아온 내가 전혀 다른 결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몇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보는 것'을 좋아한다. 'see'의 대상은 영화나 책과 같은 정제된 언어가 담긴 창작물이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날 것 그대로의 장면들이기도 하다. 지하철은 후자를 보고 담기에 좋은 장소다.

지하철을 비롯해 많은 것이 처음이었던 대학교 1학년 시절,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하나같이 낯선 감정이 달라붙곤 했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몸이 많이 불편한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슬픈 사연이 적힌 쪽지를 탑승객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대부분의 쪽지가 지하철 바닥이나 의자에 버려졌지만, 나는 호기심에 꼼꼼히 읽었다. 짧은 텍스트였지만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 슬픈 이야기였다. 그분이 다시 쪽지를 수거하러 오실 때까지 건네받은 쪽지를 꼭 붙들고 있었다. 맞은 편의 어떤 어르신이 그분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셨다. 그러자 그분은 정수리가 바닥에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이시고 어눌한 말투로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말씀하셨다. 그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났다.  또 어떤 날에는 갈라진 목소리로 크게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시던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고작 동전 몇 푼이 굴러다니던 바구니, 그리고 흰 지팡이의 다급한 타닥임에 눈물이 났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에 마주친 타인의 불행에 쉽게 몸 둘 바를 몰랐다.


지하철이 흥미로운 공간인 이유는 이렇게 서글픈 삶 옆에 유쾌한 이야기들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약간의 익명성을 보장받은 채 한 공간을 공유한다. 가볍고 재미난 낱말들과 문장들이 이리저리 통통 튀어 다닌다. 지난 주말에는 6살 남짓의 아이와 젊은 부부가 같은 칸에 탔다. 자리가 넉넉지 않았던 탓에 엄마와 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았고, 아빠가 맞은편에 앉았다. 쫑알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오랜만이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엄마, 우리 끝말잇기 하자"

"싫어. 안 해. 아빠랑 해"

"아 왜~~ 나랑 끝말잇기 하자~~"

"그럼 내가 너랑 끝말잇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천 가지 말해봐"

"천 가지!!! 됐다 이제 하자"

"안 돼"

"왜? 내가 '천 가지'라고 말했잖아!"


아이의 상상도 못 한 답변에 나는 마스크 안에서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귀에 꽂히는 한 마디와 떠돌던 시선을 멈추게 하는 낯선 이의 표정. 이를테면 끝말잇기를 하며 투닥거리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는 한 사내의 눈빛 속 다정함을 읽는 일. 너무도 다른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어우러져 있는 공간, 지하철은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그 시절 나는 나와 함께 이 철 덩어리에 몸을 싣고 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하지만, 2020년에 나는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슬픔 혹은 다정함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노이즈 캔슬링 성능이 우수한 무선 이어폰을 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는 무뎌질 대로 무뎌져서 지하철 속 작은 자극 따위에 감각이 반응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 지금은 타자마자 유튜브를 켜고 아무 생각 없이 킥킥거리다 내릴 곳에서 내린다. 타인을 향한 수줍은 내 시선과 관찰 본능을 지하철에 싣지 않은지 오래다. 시선이 옮겨간 곳이 이 세상을 절대 제대로 담지 못할 액정 속 장면들임을 깨달을 때면 새삼 슬퍼진다. 지하철도 네모, 휴대폰도 네모, 지하철 밖 풍경을 담는 창문도 네모, 의자들도 네모, 그리고 나의 마음도 서서히 네모.

 

햇살 좋은 어느 날, 지하철은 내 슬픔을 싣고 달렸다. 물론 어떤 이의 기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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