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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Oct 27. 2024

프롤로그_덩그러니 혼자


그는 방사선치료를 위해 매일 병원으로 통원해야 했고, 출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시댁에서 평일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출근길에 남편을 시댁에 내려주고 회사로 출근했다. 퇴근 후 시댁으로 가서 시어머니가 준비해 준 저녁을 먹고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댁으로 퇴근했다. 저녁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시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스르륵 주방문을 닫으며 조용히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재형이 아픈 게 결혼을 잘못해서 그런 거라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친정엄마랑 같이 가서 굿을 한번 하고 오면 좋겠는데."

"네?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어요?"

"주위에서 다들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아프다고 하니. 결혼 잘못한 탓이라고, 조상 중에 누가 샘내서 그런 거라고."

"......"

"절대 재형이한테 말하지 말아라, 난리 난다."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그래도 그 순간엔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들이 큰 병에 걸렸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때 남편이 주방 문을 열고 들어섰고, 시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스불을 켰다.


모든 엄마에게 자식은 소중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특별히 더 소중한 자식이었다. 어디 내놔도 안 빠지는 그런 자식. 소위 말해 번듯한 직장, 큰 키, 잘생긴 얼굴, 다정한 성격. 자랑하기에 넘쳐나는 자식 그 이상이었다.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을 뱉어내고자 주말 아침, 남편을 혼자 두고 친정 엄마와 함께 점집을 찾았다. 불안했다. 진짜일까 봐, 나 때문일까 봐, 우리가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었을까, 뭐라고 이야기할까. 찾아가는 30-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나와 그의 생년월일을 알려주고 잠시 손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기다렸다. 다행인지 점집에서는 남편이 아프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이혼 없이 잘 살 텐데 아마도 말년쯤 되면 몸조심해야 할 거라고 했다. (속으로 '나이 들면 다 조심해야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내가 명이 짧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그와 나의 건강부적을 사서 나왔다.

뭔가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진짜 용한 집이 맞았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몇 군데 더 찾아갔지만 비슷한 점괘였다.

며칠이 지나 시어머니가 확인하듯 물어보셨다.

"굿하고 왔니?"

"아니요. 남편 아프다고 아무 데도 맞추는 데가 없던데요."

"그래도 했어야지! 넌 어떨지 모르지만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어머님이 하시면 되잖아요."

"난 종교가 있어서 그런 거 하면 안 된단다."

"...."


시댁은 모태신앙으로 모두 성당을 다니는 신자였다. 자꾸만 독촉하면서 이미 내 탓이라고 단정 짓는 어머님과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나 혼자 마음에 담아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겨두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늘로 떠나고 나니 불현듯 자꾸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진짜 남편이 배우자인 나를 잘못 만나서 겪게 된 일이었을까? 내 탓이었을까?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남편은 아프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그때의 상황 속의 내가 너무도 선명해졌다.

"너랑 결혼을 잘못해서 그런 거다! 네 탓이다. 네 탓이다..."


남편은 결혼 5개월 만에 암 진단을 받았고 두 번의 수술, 두 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진단 4년째 되는 봄.

 3살 아이와 33살의 나를 두고 하늘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난 아직도 그 상황 속 그 자리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 1년은 매일 그 자리에 혼자 있었다. 그다음 1년은 자주 혼자 내버려 두었다. 또 그다음 1년은 가끔이었지만 혼자 있는 나를 모른 척했다. 하지만 이젠 그 속에 혼자 버려진 나를 데리고 나와 주려고 한다.


그 누구도 남편이 홀연히 하늘로 떠나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이젠 내가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괜찮아, 내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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