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타르트 Oct 27. 2024

서로에게 물들어 갈게요

28살의 나와 32살의 그가 2014년 겨울,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었다. 연애와 결혼은 나에게 너무 큰 변화였다. 나의 마음가짐도, 타인의 시선도, 거주지도, 심지어 호칭마저도 모두 낯설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혼집, 그러니까 우리가 새롭게 살 집에서 처음 자게 된 날부터 그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여보, 당신’이라 불렀다. 나에게도 이제 우린 부부이니 그렇게 부르면 좋을 것 같다며 연습을 해보게 했다. 낯설지만 차근차근해보겠다며 웃었다.     


주말이면 굳이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니 그것이 데이트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와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 그래서 집에서 VOD로 지난 영화를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나를 꽉 껴안아주던 그였다.     


금요일 저녁엔 집 앞 고깃집에 앉아 둘이서 소주잔을 부딪히며 서로에게 내가 싼 쌈이 더 맛있다고 먹여주고 일주일치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눠도 또 할 이야기는 쌓이고 쌓인다. 1차를 마치고 조금 걸어 나가 허름한 조개집에 앉아 둘만의 2차가 시작된다.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기자며 분위기에 취해본다. 취기가 오를 때쯤 다시 집으로 걸어가면 그가 나를 업어준다. 연애할 때 해보지 못했던 것, 지금은 부부니까 마음껏 해보자며 집 앞까지 나를 업고 걸어간다.     


전날 먹은 술에 주말 오전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그는 먼저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툭툭 널고 있다.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나눠 먹고 슬금슬금 나른해질 때쯤 날씨가 좋으니 밖으로 나가보자고 한다.     


겨울이 지나 이제 봄이 되었으니 새로운 옷도 살 겸 백화점도 가고 한껏 따뜻해진 봄날씨도 만끽해 본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면, 그는 늘 나에게 먼저 메뉴를 물어본다. 둘 다 좋아하는 샤부샤부로 메뉴를 정하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샤브집으로 들어간다. 남아있던 숙취를 샤부샤부로 쑥 눌러주고 우리의 이야기도 나눠본다. 지금의 우리가 어떤지, 앞으로의 우리가 어떨지, 아이는 꼭 둘 이상이면 좋겠다는 그는 쌍둥이도 좋을 것 같다며 조카를 키워본 자신감으로 우리 아이들은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며 본인만 믿으라는 말이 끝날 무렵 죽을 만들고 있던 내가 달걀을 탁 터트리는데 쌍란이 톡 하고 터져 나왔다. 그는 이건 바로 우리가 쌍둥이를 낳을 징조라며 아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우리는 웃음이 가득한 우리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저녁을 먹고 영화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땐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디저트를 포장해 온다. 서둘러 씻고 나란히 앉아 포장해 온 디저트를 먹으며 백화점에서 봤던 옷이 이뻤는지, 사지 않길 잘했는지, 저녁을 먹으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또 웃음 지어 보이고 무슨 일이든 본인만 믿으라며 ‘우리 집의 가장은 나야’라며 가정을 이루게 된 우리의 모습에 그리고 본인에게 아주 뿌듯해하며 책임감을 다하려는 그가 나를 점점 안정감으로 길들이게 했다.


 아침잠이 많아서 늘 혼자 일어나는 것이 힘든 나는 평일 출근 시간에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하는 그가 일어나라며 전화를 해준다. 그의 전화를 받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 뒤 각자의 회사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에서 만난다. 어떤 날은 출근이 빠른 만큼 퇴근도 빠른 그가 먼저 집에 도착해 밥을 해두고 기다리고 있다. 차치치 칙 밥솥이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밥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는 집안에 들어서면 그가 중문 앞에 서서 나를 반겨준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와 찌개 하나를 후다닥 만들기 시작한다. 근무시간 중간중간 레시피 공부를 하고 온 뒤 메모장을 열고 레시피를 확인해 가면서 처음 만들어보는 음식을 완성해 나간다. 그 사이 그는 거실 청소를 하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하나둘씩 꺼내둔다. 완성된 찌개를 중간에 두고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으며 오늘은 어땠는지 하나둘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있었던 작은 갈등으로 우울한 기분을 집까지 들고 갈 때면 그는 나의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얼른 말해보라며 나를 재촉하고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욕도 해주면서 오히려 나보다 더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때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점점 더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그와 나의 대화 주제가 되었고, 웃음의 이유가 되었다. 서로의 아침 출근길이 어땠는지,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퇴근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 것인지. 서로의 모든 시간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혼자에서 우리가 되는 일상에 자연스레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