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점심으로 회사 직원들과 차로 15분 남짓의 찜닭집에 막 도착하였다. 여긴 그와도 종종 먹으러 오는 곳이기도 했다. 직원들과 둘러앉아 주문한 찜닭을 기다리던 그때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보통 점심을 먹기 전 혹은 먹은 후 나에게 연락을 했는데, 지금은 시간을 보아하니 점심을 먹은 후 전화하는 것 같았다. 잠시 자리를 벗어나 나도 이제 점심을 먹으려 한다고 얼른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지금 어디야?”
“나 지금 점심 먹으러 나왔어. 오빠는 점심 먹었어?”
“나 지금 병원 왔어.”
“응? 병원은 왜? 어디 다쳤어?”
“그게 아니라... 지금 대학병원인데 뇌종양인 것 같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오늘 일하는데 이명이 들리길래 팀장님한테 말씀드리니 병원 다녀오라고 하셔서 잠시 나갔는데 여보 걱정할까 봐 말 안 했거든. 근데 거기서 X-레이 찍어보더니 바로 대학병원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지금 응급실로 왔어.”
“....... 지금 무슨”
“누나한테 물어보니까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 지금 기다리는 중이야.”
“아니... 이게 지금”
“지금 검사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뇌종양이라는 말과 함께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내 눈물을 감지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고 나는 멍하니 서서 그의 말을 다시 되뇌었다. 이명, 뇌종양...
그를 알게 된 이후부터 그는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도 했던 그는 항상 어딘가 부실한 내가 조금이라도 아플까 늘 염려했는데 난 한 번도 그가 아플까 생각해보진 못했다. 그랬던 그가 병원이라니. 그것도 뇌종양이라니 무슨 일인지 도대체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리로 돌아가니 다들 무슨 일이냐며 물어댔다. 짧게 설명하고 오늘 반차를 쓰고 퇴근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과장님께서 그래도 점심은 잘 챙겨 먹고 힘내서 얼른 가보라고 하셨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일렁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는 CT를 찍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고 계속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니 지겹다며 빨리 나가고 싶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뒤이어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응급실로 도착했다. 다들 놀라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오셨다. CT 결과도 뇌종양이 맞다고 했다. 정확한 병명은 수술을 통해 종양 검사를 해봐야 하지만 뇌종양 의심이며 혹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할 거면 의뢰서를 써준다고 했다. 시부모님은 여기서 수술하자고 했고 친정부모님은 수술은 무조건 서울 큰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의뢰서를 받으라고 하셨다. 점심 전에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그는 저녁이 훌쩍 지나서야 응급실 밖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긴 기다림에 비해 짧은 결정으로 우리는 의뢰서와 복사본을 챙겨 들고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모두들 점심도 거른 상태라 시부모님께서 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셨고 신혼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친정부모님은 그를 걱정했고 시부모님은 나를 걱정했다. 그는 점심을 못 먹어서 너무 배가 고팠다며 아주 별일 아닌 듯 걱정하지 말라며 수술만 하면 될 거라며 속없이 웃고 있었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왔다. 큰일 아니라며 내 어깨를 툭툭하는 그가 순간 너무 미워졌다. 이게 어떻게 큰일이 아닐 수 있는 거지?
시부모님은 갑자기 이런 큰 걱정을 안겨드려서 죄송하다고 친정부모님께 인사했다. 친정부모님은 지금 이렇게 건강한데 뭐 잘 되겠죠. 누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냐며 잘 해결해 보자고 하시곤 다들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엄마는 외삼촌에게 연락을 했고 외삼촌은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예약을 잡으라고 했다. 부랴부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온라인 예약을 했고 제일 빠른 시간인 월요일 오전 진료로 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와 CT 복사본을 챙기고 뇌종양의 명의는 누구인지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찾아보느라 하루를 꼬박 흘려보냈다.
주말 오후 회사 과장님께 전화를 했다.
“과장님... 저 이번 주에...” 말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서울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제가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병원부터 다녀와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죄송합니다.”
“회사 그만둔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잘 말해둘 테니 병원부터 잘 다녀와요.”
너무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월요일 새벽 시부모님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입원 준비를 하고 넷이서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가게 되는 서울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숨도 못 자고 어두운 새벽을 달려 서울대학교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빠와 오빠도 진료 시간에 맞춰 KTX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도착했다. 처음 와 본 곳에서 걱정을 한 아름 품은 나는 경직된 몸을 이끌고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예약한 교수님 방을 찾아 앞장섰다. 예약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불려진 그의 이름 뒤로 줄줄이 교수님 앞으로 들어섰다. 미리 제출한 CT를 보곤 “나한테 오면 안 되는데”라곤 혼잣말처럼 하시더니 이내 간호사님을 불러 다른 교수님과 통화를 하기 시작하셨다. “마침 해당 교수님이 진료 중이라고 하니 그쪽 방으로 가보세요. 저보단 그 교수님이 맞으실 것 같네요”라며 우리를 다른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그곳은 이름도 무서운 암센터에 있는 뇌종양센터였다. 새로운 건물로 건너가 지하로 찾아간 그곳에선 연락받았다며 마지막 환자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이미 화면을 보고 계셨고 난 자세히 들어보고자 메모장을 들었다. “ ‘신경교종’인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건 수술하고 종양 검사를 해야 정확한 병명이 나오는데 모양만 봐서는 ‘교모세포종’ 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그게 뭐죠?”
“뇌종양의 등급입니다. 1등급부터 4등급까지 있는데 1등급부터 2등급까지는 양성, 3등급부터 4등급은 악성이라고 합니다. 모양으로 악성 같은데 그건 수술해 봐야 알 수 있는 거니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 수술하면 되나요?”
“아직 많이 젊으시니 좋은 경과를 예상해야지요. 지방에서 오셨네요? 무슨 일 하시나요?”
몇 가지 질문이 더 이어지고 같이 온 사람들의 관계도 물었다.
시부모님께서 “이제 막 결혼한 아이들인데... 잘 부탁드립니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우린 빨리 수술을 하길 원했고 수술 절차도 있고 이미 잡힌 일정도 있으니 순서대로 일정이 잡히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는 병원을 나섰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수술일정을 기약하고 병원 앞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너무 큰 병원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긴장한 채로 새로운 병명을 접하고 환자 등록을 하고 서류를 떼고 하느라 온 정신을 쏟아내었다.
별다른 성과 없이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그는 이미 회사에 휴가를 내었고 수술 후 정확한 병명으로 진단서를 첨부해 병가를 내겠노라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난 4일 새 입술이 부르트고 온몸이 아파오고 있었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난 이제 아프면 안 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달라졌다. 어제의 나는 우리 앞에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는데 오늘의 나는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