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생존일기
“야, 민우. 너 럭비 해볼래?”
웨인의 제안은, 농담처럼 가볍게 시작됐다.
기숙사 복도 끝, 너덜너덜한 소파에 앉아
우린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 럭비? 미쳤어?”
서양 애들 덩치에 주눅 들어 있던 나였다.
말도 안 통해, 밥도 못 먹고 늘 쪼그라들어 있던 내게
“럭비”라니, 그건 좀… 너무 급발진이었다.
하지만 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빠르잖아. 윙은 빨라야 돼.
몸싸움은 우리가 해줄게. 넌 그냥 공만 들고뛰어.”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넌 그냥 공만 들고뛰어.’
그 말엔 이상한 울림이 있었다.
마치 나도 이 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느낌.
결국 그 주 금요일, 나는 운동장에 섰다.
형광색 콘을 깔고 럭비공을 들었다.
내 조끼에는 ‘Wing’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첫 럭비 경험은 거의 공포였다.
공이 손에서 계속 미끄러졌고,
태클은 못 피하고,
패스는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남았다.
멍투성이 무릎으로도, 다음날 아침 일찍
운동장에 나갔다.
어릴 때부터 ‘포기 안 하는 깡’ 하나는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럭비공을 잡고 달리는 감각,
태클을 피할 때의 리듬,
왼쪽을 보고 오른쪽으로 빠지는 타이밍.
그렇게 연습 또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학교 대항전이 열렸다.
운 좋게 선발로 뽑힌 나는 그저 달리기만 하고
게임이 끝나지 않길 기도하고 있었다.
시합에서 생애 첫 트라이를 꼭 하고 싶었다.
후반 30분, 동점 상황.
공이 우측으로 흘렀고,
웨인의 패스가 내 손에 정확히 꽂혔다.
그 순간, 시간은 멈췄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가르며,
내 뒤에서 외치는 팀원들의 소리도 잊고,
앞에 돌진해 오는 상대 수비수를 향해 몸을 틀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지금 넘어지면 죽도 밥도 안돼’
그 생각 하나로, 달리고 달려
라인을 통과했고, 결국 트라이를 했다.
내 생애 첫 트라이를!!
운동장은 환호가 터졌고,
팀원들은 달려와 나를 들어 올렸다.
내 발은 땅에 닿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히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우리 학교의 1군 럭비선수가 되었다.
누구도 내 영어 발음을 놀리지 않았고,
누구도 내 점심 도시락에 손대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민우’라고 불렀다.
단순한 동양인 아닌, ‘우리 팀 민우’.
방과 후엔 기숙사 마당에서
웨인, 에드가 그리고 럭비부 후배들과
작은 라인 마커를 그어 놓고 '터치 럭비'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웃다 보면
영어는 점점 덜 어렵게 들렸다.
“민우, Knock on!”
“Good job, mate.”
“Not bad! Almost got it!”
나는 영어로 웃음을 들었고,
영어로 칭찬을 받았고,
영어로 농담을 하게 됐다.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주말엔 앤드류의 아버지가
우리를 케이프타운에서 하는
프로 럭비 경기에 데려가주었다.
스테디움에 울려 퍼지는 국가,
거대한 몸집이 부딪히는 소리,
팬들의 함성, 그리고 콜라와 핫도그,
소름 끼치도록 완벽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앤드류 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민우, 저 프로선수보다 네 실력이 나은 것 같은데.”
그는 크게 웃었고,
나는 그 말이 엉뚱한 농담인 줄 알지만,
영어보다 더 쉽게 이해됐다.
그렇게 민우는
럭비공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었고,
땀과 멍으로 영어를 배워나갔다.
책이 아닌, 운동장이 그의 교실이 되었고,
그의 럭비팀이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