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월터와 한국에서, 문화충격과 웃겼던 날들

남아공 생존일기

by 제드 Jed

남아공에서 나를 보호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키도 크고 와일드한 성격의 월터.

누군가 나를 놀리면, 월터는 말없이 내 옆에

조용히 서주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열렸고,
시간이 지나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월터는 주말이면 종종 자기 집에 나를 초대했다.

월터의 집에는 늘 따뜻한 고기 냄새와

웃음이 배어 있었다.

바비큐 파티는 거의 주말 공식 행사였고,
동네 친구들, 피터까지 모여들어 고기 굽고 웃고,
드럼을 치고, 기타를 연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월터의 집엔 음악을 위한 방이 따로 있었다.
드럼과 기타, 앰프가 늘 세팅돼 있었고,
거기 앉아 월터는 드럼을 치고,

존은 베이스 기타를 쳤다.


월터에겐 존이라는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그 또한 우리 학교 내 친구였다.

우리는 점점 형제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1999년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월터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늘 아시아를 궁금해하던 그였다.
나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월터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지만,

외국인 월터를 보자 갑자기 말이 뚝 끊겼다.


그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진욱이었다.

머리가 작아 ‘닭대가리’란 별명을 가진,

늘 분위기 메이커 같은 녀석.
그는 당당히 월터에게 영어로 말했다.

“아이 엠 코리안 꼬꼬!”

월터는 잠시 멈췄다가 크게 웃었다.
“코리안 꼬꼬?”


한 친구는 월터를 보며 말했다.
“얘 디카프리오 닮았다.”

전혀 아니었지만 월터는 싱긋 웃으며,
“리얼리?”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들은 손짓, 발짓, 표정으로

친구가 되어갔다.


우리는 스키장에도 가고,
떡볶이, 갈비, 김밥 같은 한국 음식도 먹으며
매일매일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월터가 혼자 사우나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예전에 한번 같이 갔다가 온탕에 몸을 녹이며
좋은 기억을 남겼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온 월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게이를 만났어... 그리고 돈까지 달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때밀이 아저씨가 세신을 하고,

요금을 달라고 한 거였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설명했다.


“그분은 그냥 때밀이 아저씨야. 원래 돈 받아.”

월터는 어색하게 웃었지만,

그 후로는 사우나 얘기만 꺼내도 손사래를 쳤다.
그에겐 확실한 문화충격이었다.


우리는 동대문 시장에서 옷도 사고,
테크노마트에서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기기도 사고,
지하철, 버스 등 남아공에서는 누릴 수 없는
‘City Life’를 즐겼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깊었다.
월터는 마지막 날 나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란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의 문을 열어가던 시간.
그 겨울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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