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생존일기
남아공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공항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울타리였다.
그 너머로는 끝없이 이어진 판자촌이 보였다.
그 안엔 수많은 흑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울타리는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는 것을.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그 울타리 안에는 여전히 흑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늘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했기에
그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는 아프리카다.
빈곤과 배고픔, 구조적 불평등이
아직도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는 곳.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마트와 식당 앞에서 남은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멀리 있던 뉴스 속 이야기들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백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있었다.
잘 정비된 거리, 안전한 커뮤니티.
그 안에서는 남아공의 또 다른 얼굴을 몰랐다.
하지만 케이프타운 시내 주변만 해도
수많은 판자촌과 우범지역이 존재했다.
특히, 내가 지내던 시기 요하네스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도, 강간, 살인, 총격, 폭탄 사고는
충분히 '현실적인 위험'이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케이프타운 시내를 구경하다
한 백화점 옆을 지나던 중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왜 그래?” 놀란 내가 묻자,
한 친구가 주변 사람에게 상황을 묻고 급하게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폭탄물 신고 들어왔대. 어서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한 동작으로
침착하게, 하지만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여기선 그런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나라였다.
백화점 앞,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던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가 사는 일상이 맞을까?”
하지만 분명히, 그건 내가 살아가던 '현실'이었다.
TV 광고나 홈쇼핑에서도
호신용품, 방범창, 보안 장비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에서
나는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교육'이었다.
학교 대신 생계를 택해야 하는 흑인 아이들.
신호에 멈춰 선 차창으로
작은 손이 뻗쳐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최소한의 교육이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이를 알았기에
흑인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는
교육 정책을 폈다.
하지만 그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백인 학부모들도 많았다.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된다.”
그렇게 정부 교육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학부모 자체적으로 설립한 학교들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바로 그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밤,
남아공의 밤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해가 지면 거리엔 사람이 없다.
저녁 7시 이후,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는 건 쉽지 않다.
모든 이동은 대부분 차로 이루어지고,
몇몇 식당만이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힌다.
하지만 거리의 공기는 언제나 긴장감을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영화도 보면서 살고 있었다.
세상 제일 위험한 나라에서,
나는 의외로, 꽤 잘 살고 있었다.
남아공의 밤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목소리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이야기들 속에서,
나도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