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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May 12. 2022

22. 5. 11.

동물구조와 119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출근해서 근무 전 개인장비를 펌프차에 실어놓았다. 늘 하던대로 공기용기, 방화복 상 하의를 싣고 안전헬맷을 내 자리 앞에 걸어 놨다. 공기용기 개방하고 압력 체크. 270바 이상없고 열화상카메라 배터리 만땅, 제논라이트도 문제 없음. 펌프차 내부 스프레더, 유압장비, 전기톱 이상없음. 교대하는 팀 부장님께서 얘기한 갈고리 하나 빼곤 나머지 장비도 이상없었다. 장비점검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와 인계하려고 하는 순간 출동벨이 울렸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출동지령서를 보니 관내 공원 근처에 목줄없는 개가 돌아다닌다는 신고였다. 2018년 3월, 동물구조를 하고 있던 소방관을 25톤 트럭이 들이받아 세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그 이후로 비응급 상황은 동물구조를 거절 해야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4월, 소방청에선 '생활안전 출동 거절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했다. 개정된 법 조항에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동물의 단순 처리, 포획 및 구조는 구조대원이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애석하게도 여전히 시민들의 인식속엔 '동물구조는 119'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또한 우리 소방관 입장에선 출동신고가 들어왔는데  "단순 동물 처리라서 거절하겠습니다"하고 철수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누런 개 한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개의 크기는 10키로 정도 되는 성견같아 보였다. 우리는 로프와 올가미, 뜰채를 들고 갔다. 개를 잡는 데엔 뜰채가 괜찮아 보여 나는 뜰채를 들고 조심조심 다가갔다. '동물적 감각'이라는 말이 있듯 말그대로 동물은 감각이 뛰어나다. 우리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가가든 본인의 오감을 적극 활용해서 인간보다 몇 배는 뛰어난 감각들로 우리를 따돌린다. 달리기든, 후각이든, 청각이든 우리는 동물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일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동물은 신호 개념이 없다. 넓은 개활지라면 상관없겠지만 아파트 근처 도심이라면 사거리나 횡단보도가 있고, 뒤쫓는 우리는 신호를 지키며 정직하게 이동하는 반면 동물은 홀라당 자리를 떠나버린다. 어디든 자기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된다.  무리하게 잡으려 신호를 어기고 뒤쫓다보면 교통사고나 다른 안전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신호를 지키고 추적하고, 개는 유유자적 자기마음대로 길을 건너다보니 그 간격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서두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가자니 개는 점점 멀어지고, 맘껏 뛰어가자니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저멀리 누군가의 먹이를 받아먹고 있는 개를 발견했다. 한 시민이 개를 묶어놓기 위해 간식을 던져 준 것이다. 나는 최대한 재빨리 다가가 뜰채를 뻗었다. 뜰채는 개의 몸을 덮쳤고 온몸을 감쌌다. 그러자 당황한 개가 몸을 펄쩍 거리고 뒹굴기 시작했다. 뜰채가 사방으로 세차게 튀었다. 그렇게 펄쩍펄쩍 뛰다가 찰나에 벌어진 틈 사이로 개는 홀라당 도망쳤다. "입구를 발로 밟았어야지!" 팀장님이 곧 다가와 말했다. 개가 도망가지 못하게 뜰채 발로 밟아 출구를 차단했어야했는데 괜히 개가 다칠까봐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몇 번의 동물구조 출동으로 얻은 교훈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한 번 도망간 동물은 절대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번 구조에 실패하게 되면 그 동물은 극도로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경계심은 이전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차이나고, 절대 곁을 내주지 않는다. 내 예상처럼 개는 이전보다 더 큰 보폭 차이로 우리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게임 끝이다. 역시나 개는 도심을 지나 공원으로, 공원을 지나 야산으로 달아났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현장안전을 확인한 뒤 복귀했다.


이전에 이렇게 연달아 두 건의 구조출동을 나간 적이 있다. 모두 개를 잡아달라는 신고였다. 인명 구조와 관련없는 비응급 신고는 소방관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 개를 잡으러 가면 개를 몰고, 잡고, 유기견 센터에 인계한다. 보통 한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도중에 화재출동이 걸리면 현장에서 멀어져 대처가 늦어 초진이 어려울 수 있고, 이미 기력을 소진해 원활히 현장활동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멧돼지나 맹견, 벌집 등 인명 피해가 이어질 수 있는 자명한 상황은 구조 출동이 반드시 이뤄져야하겠지만 "개가 돌아다니고 있어요" "길고양이가 아픈 것 같아 불쌍해요" 같은 단순 동물처리 신고는 우리 본연의 임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건강하고 올바른 신고문화가 정착되어 더 안전한 우리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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