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의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느덧 서른이 넘은 우리는 늘 그렇듯 지난 이야기를 어제처럼 회상하고 바보처럼 웃었다. 난 내가 어느 나이로 살아가든 그 시절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을 만나면 그때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난 텁텁한 현재를 잠시 잊곤 했다.
“고맙다.”
“뭐가 고맙노. 아침부터 바빴겠네.”
“말도 마라. 아참, 자기야 여긴 내 친구. 저번에 말했던 소방관”
“아 반갑습니다. 저 소방관 좋아하는데”
“아이고, 고맙습니다. 오늘 너무 축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던지며 야구했던 코흘리개 중학생, 그 모습이 친구의 얼굴 사이로 스친다. 그리고 다시 보이는 친구의 얼굴, 소년에서 청년이 된 친구의 얼굴에서 그땐 보지 못했던 주름살이 보인다. 시간을 달력이 아닌 다른 매개로 체감할 땐 새삼 세월이 낯설다. 친구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도하다 별안간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소방관’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내게 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누구를 소개할 때 꼭 붙이는 가수, 배우, 작가 같은 수식어가 내겐 소방관이다. 난 이 단어를 지닌 채 살아가면서도 가끔 내게 묻는다. 내가 이것에 정말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소방관이 된 후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를테면 항상 사고를 생각하는 것. 특히 공사장을 지나거나 유동차량이 많은 곳을 지날 때면 늘 사고를 염두에 둔다. 길을 건널 때나 터널을 지날 때 혹시 여기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은 보통 나의 의도와는 별개로 무분별하게 연기처럼 피어난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도 불행을 자주 상상한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 존재하게 됐는지 이유를 찾아 거슬러 가다 보면 어김없이 소방관이라는 단어 앞에 멈추어 선다.
비록 더 시끄럽고 불편한 일상이 됐을지언정 내가 선택한 삶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다. 오히려 난 출근길이 즐겁다. 그리고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오늘도 출근길이 설렌다. 내가 배운 것들이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닿고, 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어떤 가치로 매길 수 없는 일들이 내 손끝에서 벌어지는 순간들을 겪고 나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내 일터는 공사장처럼 큰 차들이 반짝거리고, 난 그 속에서 매일 아침 톱과 절단기 같은 큼직한 기구들을 점검하고 시동을 건다. 우렁찬 시동 소리 사이로 소방차들의 사이렌 점검 소리가 화음처럼 울려 퍼진다. 팀원들은 그 음표 사이로 이동하며 등지게와 방화복을 버스에 싣는다. 교대하는 팀원에게 수고했다고, 전날 별일 없었냐고 묻는 안부 사이엔 우리만의 끈적한 점도가 있다.
교대 중 출동 벨이 울린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혔다는 신고. 구조 버스 경광등을 켜고 기어를 바꾼 뒤 차고지를 빠져나간다. 흔들리는 버스 밖에선 핸들을 잡고 흰 선과 검은 도로 사이를 아슬하게 달려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번쩍이는 경광등 불빛이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는다. 버스가 가벼운 아침 공기 사이를 거칠게 가른다. 하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