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에게 여름은 혹독한 계절이다. 꿉꿉한 습도와 숨 막히는 더위, 게다가 잦은 천재지변까지. 여름은 가장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어제 태풍이 왔다. 출근하니 이미 전 근무팀이 출동 중이었다. 복귀 후 짐을 싣는데 출동 벨이 울렸다. 세찬 비에 계곡물이 불어 고지대에 있는 오두막이 떠내려갈 것 같다는 신고였다. 장비를 구조 버스에 얼른 옮겨 싣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도로는 이미 엉망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지 못한 배수구는 물을 게워 내고 있었다. 도로엔 물과 각종 나뭇가지, 조그만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 쉽지 않겠구나'라고 내심 생각하며 도로를 빠르게 가로질러 갔다. 현장에 도착하자 또 무전이 울렸다. "솔섬 구조, 혹시 출동 가능한지?" 팀장님이 대답했다. "여기 솔섬 구조, 뭐 때문인지?" "아, 근처에 물이 들어와 고립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사칠, 그쪽으로 출동하겠습니다."
팀원과 둘로 나누어 난 수난구조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곳에 도착하니 역시나 도로는 흘러온 물과 흙, 나뭇가지로 엉망이었고 거기선 어르신 세 명이 물길을 내고 있었다. 난 슈트를 입으며 구조를 준비했고 팀장님은 어르신들께 구조 대상자의 위치를 물었다. "저기 저 초록색 지붕 안에 있소." 어르신의 말씀이 둔탁한 빗소리 사이로 간신히 들렸다. 팀장님과 난 초록색 지붕으로 향했고 그 집 내부에선 "여기 있어요!" 하는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집 대문엔 이미 물이 들이닥쳐 나갈 수 없는 상태였고, 우린 담벼락으로 구조 대상자를 유도하여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출근한 지 1시간 만의 일이었다.
차에 기름을 넣고 겨우 구조대로 복귀했다. 이후 각종 재난 관련 출동으로 쉴 틈 없이 바빴다. 신고자의 어머니가 자살하겠다는 전화를 하고 나간 뒤 연락 두절이 되었다는 실종자 수색 출동, 주차된 차에 불이 붙었다는 차량 화재 출동, 약국에 문이 갑자기 열리지 않는다는 인명 갇힘 신고, 차 두 대가 충돌했다는 교통사고 신고 등등.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고 구멍 뚫린 듯 세차게 쏟아지는 비도 잦아들고 있었다. 난 숨을 돌리고 샤워를 한 뒤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팀원 모두가 지친 하루였다.
그리고 새벽이었다. "화재 출동, xx 빌딩 근처에 연기가 보인다는 신고입니다. 풍호펌프, 이동펌프, 솔섬지휘, 솔섬구조 출동입니다." 벌떡 일어나 구조 버스에 탑승했다. 사이렌을 울리고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밖으로 대피하는 상황이었고, 지하 주차장에선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운전원이었던 난 차량을 주차한 뒤 얼른 방화복을 입었고, 팀장님을 포함한 팀원 둘은 먼저 현장으로 진입했다. 장비를 모두 착용한 뒤 경수, 달진이 형님과 합류하여 먼저 진입한 팀원들을 따라 진입했다.
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다. 점점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지하 2층에 들어서자 자욱한 연기로 사방이 컴컴했다. 먼저 진입한 분대가 펼쳐놓은 호스를 따라 더듬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들어갔다. 나갈 땐 이 호스를 잡고 반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물이 가득 차 묵직해진 호스를 꽉 쥐고 허리에 끼웠다. 이게 내 생명줄이다. 화점층이었던 지하 3층에 도달하니 먼저 도착했던 팀장님이 불을 끈 상태였다. 다만 현장은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공기 용량을 확인해 보니 공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가야 한다. 난 함께 들어온 경수와 달진이 형님의 어깨를 세차게 두드리며 얘기했다. "경수야! 행님! 나 70바 남았다. 지금 나가야 할 거 같다!" "어어 그래, 같이 나가자!"
다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재정비했다. 숨이 잘 돌아오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장비를 풀고 다시 새 공기 용기로 갈아 끼웠다. 곧 팀장님이 1층으로 나왔다. 팀장님께 경수와 내가 다시 한번 들어가 현장을 확인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경수는 다시 장비를 정비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까 화재를 진압하며 발생한 연기로 현장은 더 까마득한 어둠이 되어있었다. 나와 경수는 서로 의지한 채 계속 걸어 내려갔다. 나선형으로 된 지하 주차장을 몇 분 동안 내려가자, 지하 3층에 도착했다. 열화상카메라를 꺼내 현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니 멀리서 유독 빨갛게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 호스를 잡고 물을 뿌렸다. 열화상 카메라로 관찰하니 점점 온도가 내려갔다. 재발화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방수한 뒤 지상으로 탈출했다.
그 뒤로 배연하고, 장비를 정리하니 해가 뜨고 있었다. 샤워를 하니 코에서 검정이 묻어 나왔다. 현장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몰려왔다. 따스한 물을 맞고 있으니, 몸이 녹는 듯 힘이 풀렸다. 잠시 대기실에서 눈을 붙인 뒤 사무실로 가 출동일지를 쓰고 정리했다. 얼마 뒤 다음 교대팀이 출근했다. 유독 반가웠다. 하루 동안 함께 고생한 팀원들에게 인사한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퇴근길 마주한 여름 공기가 유난히 선선하고 청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