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나면 들어갈 거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라고. 많은 생각을 거치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최소한 거짓은 아니었다. 진짜 내가 어떨지 몰랐으니까. 그때가 되어봐야 안다고 생각했다. 두려워 문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망부석처럼 서 있을 수도,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들어가고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나를 잘 모르겠다. 정말로 그때가 되어봐야 알 것 같았다.
저번 근무 때였다. 오후에 개인 정비를 하던 중 출동이 걸렸다. 동일 신고 건이 많은 화재 출동이었다. 같은 장소에 '불이 났다'는 비슷한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는 건 높은 확률로 그곳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구조공작차에 올라 사이렌을 켰다. 현장은 '안전히', 그리고 '신속하게' 도착해야 한다. 결이 맞지 않고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를 모두 챙겨야 하니 출동길은 늘 살얼음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은 연기 사이로 빨간 불꽃이 헐떡거리듯 튀어 올랐다. 당시 기관을 맡고 있던 나를 대신해 팀원들은 먼저 현장으로 올라갔고, 난 뒤늦게 개인 장비를 챙겼다. 방화복 상의 하의를 서둘러 입고 등지게를 멨다. 열화상카메라를 왼쪽 카라비너에 걸고 제논 라이트를 둘러멨다.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지만 다급함이 느껴지는 현장 분위기에 압도되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펌프차 세 대와 고가사다리차 한 대, 그리고 구조 공작차와 지휘 차량이 근처 도로를 점거했고 경찰은 저 멀리서 도로를 통제하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현장엔 소방차가 불규칙적으로 뿜는 빨간 불빛이 번쩍거렸고, 그 부근은 우리 동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분주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장비를 다 입고 나오니 우리 팀원 세 명은 먼저 진입한 상태였다. 우린 사전에 선착조, 후착조를 나눠 활동하기로 미리 약속했다. 각 차량 기관들이 후착조, 기관이 아닌 나머지 인원이 선착조로 배정됐다. 난 오늘 구조공작차를 운전한 기관 대원이었으니 후착조였다. 또 다른 후착조 인원인 도윤이와 함께 지휘 팀장님 옆으로 가서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자꾸 몸이 간질거렸다. 저기 불이 번지고 있는 11층에선 우리 팀원들이 진입해서 활동하는 모습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지휘팀장님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팀장님 둘이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어, 그렇게 해라."
하는 순간 승락이 형님이 도착했다. "하늘아 우리 둘이 진입하자, 도윤이는 여기서 지휘 팀장님 지시 따르고." "예, 형님 갑시다."
승락이 형님과 2인 1조로 진입했다. 아파트 진입 전 화재를 어느 정도 진압하여 초진이라고 얘기하는 무전을 들었다. 난 형님께 얘기했다.
"형님 초진됐다는데 우린 11층 말고 옥상 가서 배연하는 게 어떻습니까? 옥상 문 열고 내려오면서 혹시 아파트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내려오다가 11층에서 팀원들이랑 합류하고요" "오케이, 가자."
형님과 난 옥상인 15층에 도착했고 역시나 복도는 연기로 가득했다. 짙은 연기 앞에선 제논 라이트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고 열화상카메라가 전달하는 세상을 대신 확인하며 더듬더듬 이동했다. 양압 상태로 한 면체에서 우리의 숨소리가 자욱한 연기 사이로 울려 퍼졌다. 앞이 보이지 않고 시각이 차단되니 유독 숨소리가 더 크고 깊게 들렸다. 계단을 하나하나 조심히 오르다 보니 옥상에 도착했다. 방화문 앞으로 가서 훌리건툴로 문을 열어젖혔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방화문이 열렸고 빠른 속도로 연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굴 사이로 회색 연기가 썰물처럼 두 갈래로 퍼졌다. 시야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15층부터 내려가며 문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계십니까!" 섣불리 문을 뜯어 개방을 할 순 없었기에 최대한 목청을 높여 내부에 구조 대상자가 있는지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다행히 인기척이 느껴지는 세대는 없었고 무사히 11층에 도착했다. 11층에서 팀원들과 합류했다. 내부를 보니 화재는 상당 부분 진화된 상태였다. 다만 집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타 있었다. 우린 지상으로 내려와 잠시 장비를 벗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모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엔 면체 모양으로 저마다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방화복 상의를 벗자, 세상의 시원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팀원들도, 나도 그 속에서 함께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난 지금도 숨 쉬고 있고 이전에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지만, 지금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숨을 쉰다고 꼭 살아있는 건 아니었다. 살아있음을 정의하자면 바로 지금이었고, 현재가 나로서 가장 가치 있게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난 그제야 내게 했던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 대신 제대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이 나면 동료와 함께 들어갈 것 같다고. 내가 방금 마음 가는 대로 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람은 변한다지만 그 모습만큼은 변치 않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때가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존재하는 순간이라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