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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은새 Oct 14. 2024

쓰레기봉투

241013

출동 벨이 울렸다. 치매 환자인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경찰이 먼저 도착하여 신고자를 만난 상태였다. 신고자의 집은 6층이었고, 선착한 경찰과 신고자가 계단을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거동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 것이 신고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 같았다.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계단을 한 개씩 겨우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팀장님이 말씀했다.

"도윤아, 업어드려라."

도윤이가 내게 장비를 넘기곤 신고자를 업었다. 멋쩍어하시던 할머님은 도윤이의 등에 업힌 뒤 군말 없이 몸을 맡겼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몰러…. 기억이 안 나"

"현관 비밀번호 기억 안 나세요?"

"응…."

"그럼 남편분은 계시나요?"

"죽었어."

"혹시 그러면 자제분들은 있나요?"

"아니. 다 죽었어…. 물에 빠져 홀라당 다 죽어버렸지."

비극을 남 얘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할머님을 보며 순간 공기가 차가워졌다. 미망인의 언사는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는 듯 오히려 고요하고 차분했다.

연달아 다섯 번을 시도했지만 모두 틀렸다. 도어록은 자신을 방어하듯 반짝거리며 숨을 거뒀다. 몇 분간 작동이 안 될 터였다. 적막함 사이에 난 할머니를 머리에 담았다. 그 모습은 내가 현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 앞에 있는 구조 대상자의 삶과 고통에 감히 끼어드는 것. 그런 순간은 예외 없이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나 스스로 그 공간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마음을 내 가슴속에 담으려 하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벌벌 떨며 계단을 오르던 모습,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필사적으로 비밀번호를 찾으려던 모습을 보며 연민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유약한 존재가 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주저앉은 이 초라한 행색의 인간이었다. 난 발밑과 할머니의 정수리를 번갈아 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에게 6층은 6천 미터였고, 매번 눌러야 할 현관 비밀번호는 지독한 기억력 시험이었다. 그에게 삶은 매 순간 치열한 투쟁이었다.

"찾았습니다! 팔구공공이사"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다행히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그의 요양보호사가 남겨놓은 듯한 메모가 있었다. 할머니는 겨우 몸을 일으켜 아슬아슬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내 모습을 감춘 할머니의 현관 앞 신발장엔 꽁꽁 묶인 세 개의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봉황 여기 수리 구조. 시건 개방 완료, 구조 대상자 구조 완료 후 철수합니다."

팀장님의 무전을 들으며 터벅터벅 내려오는 길에 초록색 쓰레기봉투가 눈에 밟혔다. 나에겐 깃털처럼 가벼운 쓰레기봉투가 누군가에겐 거대한 부담일 것 같아서, 지팡이를 짚고 낑낑대며 내려갈 그 모습이 선하게 보여서, "이거 치워드릴까요?"하고 용기 내지 못했던 내 모습이 오랫동안 미웠다. 그날 복귀 길은 여느 때보다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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