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았고 단풍은 붉었다.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가을이었다. 만추구나. 혼잣말하며 계단을 올랐다. 소방의 날이라며 본부에서 자체 행사가 열렸다. 점심을 먹고 본부 2층에 마련된 족구장에서 단합대회를 했다. 흙먼지와 공 차는 소리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은 끝없이 파랬다. 지구에 하늘색 물감을 쏟은 듯했다.
개인 정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출동 벨이 울렸다. 실종자 수색이었다. 이미 오전에 동일한 출동을 나갔던 나는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내게 실종자 수색은 까다로운 출동이었다. 실종자 수색은 대개 구조 대상자의 위치가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이며, '여기서 저기로 움직였다'라는 티끌만 한 단서만을 가지고 수색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 오니 경찰이 도착해 있었다. 줄지어 도착하는 소방차 몇 대를 보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십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이분께서 12시 정도에 길을 따라 올라가셨고요, 그리고 30분 정도 여기서 담배를 태웁니다. 그리고 주황색 밧줄 하나를 손에 들고 저기 보이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셨어요. 네 확인했습니다. 우리도 조를 나눠서 수색해 보겠습니다.
오후 5시였다. 겨울이 가까워져 해가 짧아지고 있었다. 20분 정도 뒤면 해가 지고 컴컴해질 것이다. 팀장님 얼른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조금 더 서둘러 보자. 그리고 몇십 분 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왔다. 시야도 점점 어두워졌다. 가시거리가 30m, 20m, 10m로 점점 짧아졌다. 어둠이 덮치는 가운데 곳곳에선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만 귀에 울렸다. 누군가 소리만 들었다면 마치 밤 사냥을 떠나는 이리떼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찾았습니다! 곧이어 무전기가 울렸다. "태복 여기 xx 펌프, 구조 대상자 찾았고, 현재 나무에 걸려있는 상태. 구조대는 사다리 들고 지원 와주길 바람" 팀장님과 난 나머지 팀원과 함께 사다리와 칼을 챙겨 구조 대상자를 찾았다는 장소로 이동했다. 구조 대상자는 꽤 나이가 있는 어르신이었는데도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타고 먼 거리까지 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이는 본인의 모습이 발견되질 않길 바라는 듯했다. 대개 산에 나 있는 길을 타지 않았다. 험한 비포장도로 같은 거친 산길을 헤쳐갔다. 사다리가 세 발짝마다 나뭇가지에 걸렸다. 몸을 거의 수그린 채로 나무에 걸리지 않게 이동하다 보니 꽤 쌀쌀한 밤이었는데도 등줄기엔 땀이 흘렀다. 등을 지나 이마에 땀이 맺힐 때쯤 현장에 도착했다.
시선을 올려다보니 비극이 걸려있었다. 사다리를 걸고 나무를 올랐다. 한 발짝씩 가까워질 때마다 산자의 영역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다리 잡아라. 예. 한 명 더 와야 합니다. 여기 몇 명 더 붙어라. 다리 꽉 잡았나? 예 잡았습니다. 그럼 자르겠습니다. 하나, 둘, 셋. 툭.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힘없이 안겼다. 팽팽했던 줄이 끊긴 자리엔 올이 나간 섬유 몇 가닥이 을씨년스럽게 붙어있었다. 불규칙적으로 잘려 나간 그 표면이 마치 죽은 자가 삼켰던 슬픔의 모양 같았다. 이미 딱딱했던 그의 시신을 들것에 단단히 고정했다. 이제 내려가시지요.
그날 컴컴한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산은 고요했다. 새도 울지 않았다. 시냇물은 멈춘 듯 고요했다. 적막한 산속에선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난 그 고요 속에서 죽은 자가 살았던 때를 떠올렸다.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본부 계단을 오르고 있던 그때, 가을을 눈에 담고 코끝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을 때, 그때 산자였던 그는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삼십 분간 코와 입에 하얀 연기를 담았다. 가을 하늘에 퍼져 사라지는 연기를 그는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같은 시간, 하늘, 세상 속 달랐던 간극을 목도한 난 긴 한숨을 뱉었다. 담배 연기 같은 입김이 하늘로 퍼졌다. 하늘은 영영 해가 뜨지 않을 것처럼 깜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