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서 '친해지길 바라'를 구상하고, 상상하고, 흐뭇해하고, 실망하고, 가슴 졸이고 있다. 대상은 수니와 하니. 수니는 순희를 부르는, 하니는 영한을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 이렇게 부르면 좀 더 가까워지는 듯하여 기분이 좋다. 난 어머니 아버지와 그렇게 가깝지 않지만.
사실 우리 사이가 급속도로 멀어지게 된 건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부터였다. 특히 난 노골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많이 드러냈다. 나와 누나는 어머니의 은퇴식은 치러주고도 아버지께는 그러지 않았다. 누나는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난 속이 좁았고, 당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악감정이 가득했으니 '이건 당신의 업보예요'라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자는 물과 기름이었다. 당신이 불이면 난 물이었고, 당신이 산이면 나는 바다였다. 우린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고 늘 대척점에 존재했다.
그에 비해 어머니와는 비교적 가까운 사이였다. 내가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난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면 가슴 시리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바쳤다. 그 시절 부모들이 늘 그렇듯 일과 집만 반복하고, 하루 종일 일터에서 피붙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 비로소 난 당신의 노고와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아이도 없는 내가 느끼는 중압감은 겨우 당신의 십 분의 일 정도겠지만. 어떻게 이 찬 바람 휭휭 부는 살얼음판 같은 사회에서 온전히 우리를 지켜내셨나요. 이렇게 물으면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아무 말도 못 할 걸 알면서.
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각각의 이유로 서툴다. 한쪽은 좋아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한쪽은 미운 정이 들어서 놓지도 가지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소방 일을 하며 나름대로 좋은 점은 삶의 유한함을 목격하는 것이다. 내가 숨을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감동적인 문장을 읽는 행위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래서 익숙해진 일상에 낯섦을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직업의 가장 큰 행운이다. 그렇게 내 주위를 둘러본다. 두 명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수니와 하니.
요즘 수니와 하니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강해져 일을 마치고 부산으로 종종 향한다. 어젠 수니와 하니와 저녁을 먹었다. 몇 년 만에 하니와 술잔을 부딪쳤다. 하니는 술을 마시는 행위가 나에겐 아주 큰 용기를 냈던 행동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함께 들어온 고깃집 내부를 보고는 연신 대단하다며 감탄 중이다. 하니는 '무한'이 적힌 곳을 좋아한다. 맘껏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마음이 편해지는 듯하다.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기업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 없고, 늘 고객인 우리가 지는 장사일 테지만 하니에겐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하니는 그저 좋아하는 상추를 고기에 실컷 싸 먹고 싶은데 눈치가 보이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대부분의 식당에선 채소를 더 달라고 요청하면 눈치가 보인다.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이유다. 나름대로 용기 내서 진행했던 '친해지길 바라'는 동네 고깃집의 휘황찬란한 라인업에 눈이 휘둥그레진 하니의 감탄사만 남았다. 난 그래도 만족했다. 그의 마음속엔 행복이 남았을 테니. 그 주체가 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밥을 먹고 어머니와 산책하러 갔다. 집 근처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수니는 걸음이 빠르다. 성인 남자인 나와 비슷하거나 더 빠르다. 그래서 늘 수니와 걸을 땐 보폭은 좁게, 발걸음은 빠르게 하여 팔은 휘휘 저어야 한다. 수니는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다. 이건 그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데, 흐름에 맞는 답변을 하면 수니가 좋아하는 주제다. 예를 들어 내가 돈에 관해 얘기할 때 "그치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들다." 식의 대답이 나오면 주제가 꽤 맘에 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얘기를 할 땐 엉뚱한 소리를 한다. 한창 구름 얘기를 하는데 바다 얘기를 하는 식이다. 얼마 전 다녀온 광주가 아직도 꽤 가슴속에 많이 남아있어 광주 얘기를 꺼냈더니 갑자기 수니는 길을 가다가 본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얘기했다. "꽃이 이렇게나 몽실몽실 맺혔네." "아니 그래서 광주에 갔더니 빌딩에 총알 흔적이 그대로 남았더라니까요. 그게 얼마나 소름 끼치던지요" "여기 분수대가 있네. 하윤이 데리고 오면 엄청나게 좋아하겠다." "……." 난 수니의 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니에게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일순간 마음에 일었지만, 수니의 산책할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잎을 물들였다. 은빛으로 나뭇잎 표면이 반짝거렸다. 선선하고 고요한 가을밤이었다.
사실 부모님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요즘 내 삶에 부는 어떤 바람이 이런 생각의 변화를 야기한 걸까. 삶이 유한함을 얘기하는 현장일까, 오춘기가 되어 매번 새침데기처럼 바뀌는 내 마음일까, 아니면 부모님과 친한 이들을 보며 느낀 부러움 때문일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수니와 하니랑 친해지고 싶은 이유보다 수니와 하니와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이 몇 그램이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다. 마음만으론 저울 눈금이 변하지 않는다. 난 휴대전화를 들어 다음 주에 데이트할래요 라는 문장을 썼다. 물음표 뒤엔 커서가 깜빡거린다. 곧 저울의 눈금이 다시 한번 움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