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사람들과 나는 일했었다.
“나는 걔가 내 눈 앞에서 죽어버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야.” 란 말을,
나의 전 희생자(라고 하겠다)를 두고
정말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는 사람과
나는 일도 상의하고
몇번이나 사석에서도 마주쳤다.
그 때 나는 ‘난 아니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근자감이었고
결과적으로 보면 안일했다.
그 일들을 겪고 앓은 후에
복직해서 실물로 그를 다시 보자
메스껍고 울렁거려서
나는 입을 틀어막고 자리를 벗어닜다.
혼자서는 못한다. 정면에서는 못한다.
어떤 말도
어떤 음해도
그런데 모이면 된다.
한사람이 깃발을 들면 모두 그것민 보고 따라간다.
따돌림과 배제는 그렇게 일어난다.
계모가 아이를 괴롭힌다고 하자.
계모니까 그러겠지 하는 수준을 넘었다고 했을 때
친부가 그녀를 말리는 게 아니라
동조하고 묵인하는 일이 벌어진다.
자신이 친아빠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친부는 양모와 합쳐서 둘이 된 것이다.
나는 출근길에 지방법원 앞을 지나면서
가슴이 먹먹해서 혼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정인이 사건’으로 그 공판이 열리던 때이다.
그때 머릿속을 채운 건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무서웠을까 ..
였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사람이라고
그런 느낌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장에서 따돌려지고
투명인간이 되고
업무에서 배제당했을 때
내가 안 것은
많고 많은 이들이
사람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쉽게 장악하고 돌려 놓을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다수임에서,
그러니까 여러 명이란 데서 나온다.
그 세(세력, 기세)는
이제 누가 봐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여럿이 합세해서 사람 하나 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의 잘못으로 특정되지 않으면서
사이사이 갖고 있던 감정의 해소가 된다.
분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군함도’(2017년)에는
태평양전쟁 말 일본군 위안부 말년 역할로
배우 이정현이 등장한다.
그녀의 대사(아래)는
일을 겪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경험을 한
나에게 강하게 와서 닿았다.
“필리핀이란 나라가 있어, 거긴 사시사철 더운 나라야. 거기 모기는 잘못 물리면 죽기도 해. ……한번 물리면 온몸이 불덩이가 되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속이 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금방 죽지도 못하고…….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데……. 일본 군의관이 살리더라……. 그렇게 살아나니까 내 피를 조선 놈이 빨아먹네? 조선인 포주한 놈이 찬물에 씻기고 다시 일본 놈들 받으라고……. 필리핀까지 정신대로 보낸 것도 조선 순사고, 겨우 살아 돌아간 나를 동네 창피하다고 이리저리 돌리더니 여기로 다시 보낸 것도 조선 놈이고……. 조선 사람 붙잡고 하소연을 해? 숨통이 트여?”
조선인 포주,
조선인 순사,
어쩌면 이장이었을지 모르는 조선인..
그들이 왜 말년을 위안소로 밀어넣었을까.
그들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이익이 있았던 것이다
그럴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일하거나
일하는 척만 했고
이래도 저래도 월급은 나온다
내 식구가 아닌데
내 자식도 아닌데
너야 아프거나 말거나
우린 원래 이렇게 살았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너만 나가면 돼.
끝까지 그들은 ‘우리’로 남는다
다같이 따돌렸고
일제히 외면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