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이 정치를 관둔다는 것과 같을까? 다를까?
생각을 뒤집어 보자.
열심히 일했으니까 번아웃이고,
열심히 하니까 이상한 눈으로 본 것이지,
그냥저냥 살았으면 안 왔다. 여기까지도.
정확하게는 내가 딱 싫어했던
바로 그 타입으로 나는 전환됐다.
정시 퇴근, 정시 출근.
아무 관심도 없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게 하다 보니까 되더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마치 나처럼, 내가 겪고 생각한 대로 스토리로 올려 주신 ‘언더독'님의 혜안에 나는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가 깨났다.
정말 나는 과장과 같은 조직의 보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5일' + 저녁 야근,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해 왔다.
https://brunch.co.kr/@d359e7dda16349d/630
그러다가 지난 일 년 간
정말이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시간을 보냈고,
'쟤는 못 일어날 거야.' 하고는 손을 툭, 툭 털고
현장을 빠져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명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이다.
그래도 될까? 그들이 '공복(the (civil) servant)'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맞긴 할까?
주위 사람도 망가뜨리면서
가능한 이야기일까.
공무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공무원이 아니다.
정말이지 일은 개별 공무원이 하는 것이고
지금은 그것을 이끌어갈 능력과 여건이
어느 하나 이상 부족한 상태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뉴스(아래)처럼 ‘탈출이 지능 순'이라면 성대리는 지능이 낮은 것이 뻔하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642610
세대 갈등보다 몇 백 배 폭발적인
업무 갈등, 조정 실패, 리더십 부재로 인해
뭘 해도 늦은 나이에 진입한 상태에서
나는 장대한 행진을 멈추어 딱 서 있다.
오늘도 'I'를 떠올렸다. 'I'의 사무실에서 부서 개편과 업무 조정 방향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들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직 'I'를 생각하면서 지낸다는 말은 아니다.
그를 보살폈던 성대리는 이제 없다.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던 시대는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공복은 커녕, 시민을 '머릿 수'로, 즉 '돈'으로 보는 사람들과 싸운다는 것은 야생의 상태에서 친구 하나 없이 심장이 멎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뜯어먹힌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과장도 'I'도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났을 때 공무원이 아니었던 것처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무원으로 살지는 않는다.
떠날 때는,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자기들이 공통적으로 위계질서를 중시해 성대리와 같은 사람이 자신들 옆에 ‘살았었’다는 것을 잊었고
위계에 입각해 그저 만만히 봤기 때문에 안하무인이었던 말투부터 ‘인사’라는 결정까지에 이르기까지
깊은 상처를, 진한 모욕을 입히고 준 것을.
성대리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이 정치를 관둔다는 말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성대리는 지금도 바쁘고 바쁜 날들을 살고 있고
정치인이 정치를 관둬도 뭐라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점은 이치가 같다.
어떻게든 열심히 뭔가 집중해서 했던 사람들,
한 번 목표를 가졌던 사람들은
다만, 정치인이 정치를 관뒀다는 것은 (내가 알기엔)
다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에 비해 성대리가 공직에서 만난 수많았던,
아우성 치는 동료들과
권리 의식이 높아서 기관장들 방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나오면서
“내 존재감이 '이 정도'야.” 했던 사람들에게
에워싸였던 현실을 결코 승인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무엇이 중한데,
말을 쉽게 바꾸고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과 함께 하긴,
꺼져 버릴 수 없는 마음속 불이 남은 상태에서,
그들에게서 도저히,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여기서는 성대리가 죽으면 죽었지,
‘I'와 과장이 손을 잡았으면 잡았지,
권력의 맛, 인맥의 힘, 관료주의의 뿌리를 맹신하는
집단적 마취 상태에서
어디선가 'I'를 다시 만난다면,
그리고 과장의 퇴임식에 내가 간다면
- 둘 다 그럴 리가 없는 가정을 하는 것이지만 -
나는 그들을 내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토록 모셨던 두 사람이 이제 보고 싶지가 않다.
그들이 삶에서 내린 결정의 한 자락이 내가 옷을 벗듯 모두 벗고 나와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타는 성정이었음에도
그렇게까지 해 주었다.
그들 하나는 나를 아꼈고 다른 하나는 나를 시기했다.
그러나 당연히 인간이 가지게 되는 애증의 감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야 하는 선택의 순간,
두 사람은 매우 비겁한 모습을 남기고 숨어 버렸다.
나는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 수발을 했다.
곡을 찾아 주고 탬버린으로 박자를 쳐 주고
박수를 쳤다. 내 노래는 하지 않았다.
내 노래가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피한 것’이 삶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