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방울 두 방울 땀인지 눈물인지?
“또 코로나.”다.
공휴일이라서 꽤 먼 곳까지 탐문을 했는데 5:5다.
병원이 문을 안 열었던지, 미어 터지던지.
코로나의 성격상 ‘내가 언제 어디서 걸렸지?’를 묻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알면 뭐해? 이미 아픈데!
어디선가 쓱 나타나 얼굴을 내미는 반가운(?) 얼굴이
반가와하긴 너무 오래 됐다 싶다. 이미 잊을 만 했다.
코로나도 그렇지만
또 가느다랗고 작디작아서 빠져 버리고도 찾는다는 일조차 하지 않은 바늘 하나가 어느날엔가
방바닥에 누워서 ‘나 여기 있었지~’ 할 때도 그랬다.
사람들 누구나 오랜 시간 들여다 보지 않아서
이젠 정말 다시 얼굴을 마주 한다는 생각부터가 어색하다 싶으면 만나지 않고 서서히 서로를 잊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월이 흘러서 좀 잊혀지는 것 또한 사람에 대한 예의일지 모른다.
세월이 이만큼 지나서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망부석’ 뿐이어야 한다. 하물며 악연이었음에랴.
직접 그렇게 물어 본 적은 없었으나 ‘I'는 그 무렵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 고비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I'에게 말하곤 했었다.
시인 류시화의 산문 일부이자 책 제목인 그 말을.
다들 짐작하시게도 그것은 바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IMF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은 대개
그 ‘국가 부도’ 사태의 직격탄을 자신의 가계가, 자신의 사업체가 정면으로 맞은 분들일 것이다.
마치 한 번의 사인으로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위를
친구나 지인 빚 보증에 태워 버린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 때 말할 것이다. 뒤돌아 보지 말라고.
쉽지 않은 일이다. 괴로움에 빠질수록 더 그 일이 있기 전으로 가면 황홀에 빠지는 법. ‘연대 보증을 서명하지만 않았더라면...’이라 생각하면서 앉은자리에서 둘러보는 우리집 살림살이가 ‘가압류 딱지’ 뒤에서
더 환하게 빛나는 법이다.
그만큼 다시 비참에 빠진 나에게로 돌아오기는,
현실을 자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말은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고들 한다.
말이 무서운 것은 또 하나,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처음 ‘분위기가 수상하다.’라고 느꼈을 때가 아니라
모든 왕따가 진행되고 난 후, 정신이 든 다음이었다.
바로 과장과 그를 용인한 무리들이 내게 ‘일부러’ 그렇게 대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게 했다.
지하철에서 남의 발 위에 내 신발을 올리고도 우리가 ‘용인’받는 이유는 하나다.
일부러 밟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익스큐즈 미’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가. 사람들이 직장 내에서 그들끼리 계획을 짜고
한 사람을 닦아세워서 결국 일을 빼앗고...
이런 스토리가 가장 조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제일 빠져나오기 어려운 감정의 터널을 만든다.
어떻게든지 재발과 후유증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려고 한다. 맡은 일의 최소한만 해 내려 한다.
‘순살 아파트’, ‘순살 의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처럼 나는 ‘있어야 할 것이 쏙 빠져 버린 채’
‘거적문에 돌쩌귀’*를 단 듯 살아가면서
일상을 하나 하나 ‘킬’해 가는 현실이다.
* 거적문에 돌쩌귀: 제격에 맞지 않거나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뜻하는 속담.
그러니 뭐가 희망이고 뭐가 좋겠는가.
심란한 날, 울렁거리는 날. 모든 날에
자전거를 타면서 했다. 자전거도,
타면서 뒤돌아 보았다간 고꾸라질 수 있다.
아시다시피 기운이 많지가 않다.
왕따 피해로 커리어는 날아 갔고
원래 근육질이 아닌 몸은 각종 시도로 삭신이 쑤신다.
한 주간 두 회의 글 발행을 누르는
내 손이 나를 잡아서 계속 끌고 가고 있을 뿐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왕따 가해자들 얼굴이 생생하고
그 면면 자체가 잊히지 않아서
다른 건 늘- 물건 어디다 두었는지, 뱅킹 암호는 뭘로 해 두었는지- 헷갈리고 잊어 먹으면서도
그 일들은 ‘치매’ 영향을 좀처럼 안 받는다.
지금처럼 아프거나
지금처럼 혼자라고 느낄 때면 진짜 많이 받는다.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살려고,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서칭을 한다.
딱 걸렸다!
https://m.blog.naver.com/with_msip/221880699587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은 ’세상 진리‘라고 난 생각한다. 결국 ‘필요’에 의해서 하지 않던 일에 착수하고 가지 않은 길이 닦인다.
아무리 해도 침체되고 우울한 감정에 지배되는 날,
‘내 땀 눈물’의 가치가 폄하됨을 느끼고
정신력이 한 땀 한 땀 공그르기에 찔려 버리던 날은
또 찾아 올 것이다.
그렇다 치고 이제 ‘표면 장력’의 힘을 믿자.
지금 땀 흘리고 눈물을 쏟지만 언젠가 머지 않은 날에 꿈이 이루어진다. 흐르고 쏟긴 땀 눈물이 모여서 방울이 되고 막을 이루며 나를 지탱할 힘으로 바뀔 것이다.
사람 죽으라고 염불 왼 그들보다야! 잘 살자!
내가 살려고 한 모든 노오력이 그게 정답일 게야.
그러니 살게 되겠지. 모든 물이 물방울이 되는 날,
나도 사는 날이 올 거야.
손수건이 다 해어지도록 흘린 땀과 범벅이 된 눈물이
무가치한 것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