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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14.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전 촌놈이 아닙니다..

합격자 신체 검시를 마치고 상경하여 신입승무원 교육 첫 날이 되었습니다.

훈련 입교를 위한 여러가지 행사가 끝난 후 남여 동기들은 반을 나누어 학과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운좋게도 내가 속한 반은 여승무원과 함께 교육을 받는 반이었고 남승무원과 여승무원의 비율은 1대3 정도였습니다.

20대 후반의 대한민국 남자로서 남녀공학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고등학교 생활을 감안하면 항공사 입사이후 제 인생의 최고 행복이 시작되었습니다.

군대를 갔다온 남승무원들의 평균 연령이 동기 여승무원들보다 보통 네살에서~다섯살 정도 차이가 났으므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오빠 동생이 되곤 하였습니다.

행복이 아닐수 없었겠죠? ㅎㅎ


하지만 교육이 시작되면서 지방색이 두드러진 동기들간에 알게모르게 거리감을 갖게 되었고, 나름 이미지 관리를 위한 개인적 행동의 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여승무원들에게 둘러쌓인 남승무원들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멋있고 세련된 이미지에 대한 남자 동기들의 욕구는 과장된 행동과 말투에서 가장 많이 드러났고 , 남자가 보기엔 누가봐도 허세임에도 여승무원들은 그런 남자 동기들을 좋아 하는것 같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는 비록 부산에서 왔지만 상대적 촌스러움으로 인한 긴장감과 사투리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주눅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승무원 교육 초기에 가장 중점을 두는것은 승무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강사들은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가장먼저 신입 승무원들의 복장상태와 두발 및 화장 상태를 확인하였습니다.

대학 시절 무스도 한번 바르지 않고 늘 허름한 옷림을 주로 하고 다녔던 저로서는 깔끔한 헤어와 단정한 옷매무새를 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제 관점에선 문제가 었지만 강사들이나 서울 출신 동기들의 눈에는 촌스럽기 그지 없었던 모양입니다.

촌스러움에 관한한 저뿐만 아니라 동향 출신의 동기나 서울출신이 아닌 동기들의 공통된 근심이었을겁니다.


결국 남자 강사가 저에게 붙여준 별명은 '면장님' 이었고 다른 동기 한명에게는 ' 이장님'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래도 이장보다 면장이 낫다는 생각에 나름 체면을 살렸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서울 출신 동기들과 강사들의 눈에는 도찐개찐이었겠지만 면장이라는 별명이 썩 좋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관습에 익숙해진 대한민국 사람의 한명으로서 촌스런 이미지를 달고 생활하기란 간 고역스러운게 아닐수 없었습니다.

헤어스타일부터 넥타이, 구두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가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진리는 사실이었습니다.

동기들의 장난끼 어린 놀림과 강사들의 지적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친화력과 유머 감각, 그리고 기발한 재치 및 광범위한 상식(^^)으로 인해 어느정도 무뎌 졌습니다.

특히 저의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감각은 많은 여승무원 동기들과 친해 질수 있었던 장점이 되었습니다.


공항에 가면 많은 승무원들을 볼수 있습니다.

깔끔한 상태의 복장과 두발 상태,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는 누가봐도 세련되어 보입니다.

처음으로 항공기를 탑승하는 승객의 모습은 누가봐도 어색함을 알수 있습니다.

처음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행동이나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촌스러움을 자아 냅니다.

가끔 단체 승객중 자기 일행중 누군가가 처음 비행기 탄다고 승무원에게 일러주는 사람이 있는데, 승무원 시선에서는 일러주는 그사람이 더 촌스러워 보입니다.

비행경력이 거듭 되면서 제 눈에도 많은 이장님과 면장님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촌스러움이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 또는 매너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 자신은 오히려 그런 승객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고 친절을 베풀어왔습니다.


공항의 모든 절차나 안내 표지판들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애초에는 다 촌놈일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촌스러움을 자꾸 감추고 덮으려고 하면 더 촌스러울뿐 감춰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체면불구하고 물어보고 확인하게되면 순박해 보일수 있지 촌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25년이 지난 요즘 저에게는 만사에 여유를 갖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당황스러움도, 촌스러움도, 어색함도 없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느긋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아닌데도 미국에 있는

뉴욕이나 LA에 가면 꼭 스타벅스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 May I have your name?"

" Jack, I am Jack..."

잠시 후 내 이름이 불리면 커피를 받아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이렇게 저는 촌티를 벗습니다...

" 더 이상 저는 촌놈이 아닙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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