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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15.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고객 응대의 팁

소비자의 시대에서 고객만족의 시대로 넘어간 이후 , 불과 몇년만에 고객 감동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소비자의 욕구가 커질수록 불만도 함께 다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좀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독점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던 시대에서

기업간 경쟁이 심화 되면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관점이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생존을 좌지 우지하게 된 고객들로 인해 고객 만족에서 고객 감동으로의 기조 변화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입 승무원 시절은 동기들과의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익숙치 않은 비행에서 경험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힘든 비행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동기들과의 한잔술은 보약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 모임을 갖던 어느날 동기 한 녀석이 우울한 표정으로 넋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 하루 종일 첨 보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해야 하는 이 직업이 별로 좋은거 같지는 않다..." 그러면서 소주 한잔을 들이키는데, 그 녀석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남자 직업으로서 남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야만 하는 자신의 느낌을 씁쓸하게 표현하는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하루동안엔 수백명 이상의 낯선 사람에게 시원하거나 따뜻한 음료 또는 따뜻한 기내식을 제공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나는 앞으로 얼마나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라고 말입니다.

모든일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 될수 있는 법인데 그때 승무원일을 약간은 부정적으로 받아 들였던 그 녀석은 지금 수석 사무장으로서 대통령 전용기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였고 , 착하고 이쁜 아내 그리고 두딸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나는, 비행은 아주 즐겁게 하고 승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쁘지만 잔소리가 많은 아내와 두명의 아들 딸들과 오늘도 신경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비스 규정과 절차를 엄격히 지키기보다 가끔 선을 넘은 호의를 승객들에게 아슬아슬하게 베풀며 오늘도 쓰릴 넘치는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규칙과 규정 선(線)안으로 움츠러 들면 인간적인 유연성을 잃게 되고, 지나치게 그 선을 넘으면 교만과 독선이 될수 있으므로 적당한 범위 내에서 규정과 절차를 운용하여 회사의 이익과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 내는게 진정한 서비스의 목적이 아닐까? 하고 오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승무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근심하는것이 바로 회사에 접수 되는 고객 불만입니다.

일부 물질적인 불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고객 여러분의 감정에 의한 불만이 많습니다.

이상하게도 기내식에 대한 불만이 승무원의 태도에 대한 불만으로 변질되고, 피치못한 사정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도 승무원이나 직원들의 불성실한  자세로 확대  해석됩니다.

그래서 고객 불만을 받은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억울함에 마음 아파하고, 상심하고, 더욱 더 소심하게 서비스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조금만 바꾸면 불성실한 태도나 자세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어집니다.

경험에서 터득한 고객 응대 기법 중 하나가 '노출'입니다.

노출이란 내가 담당하는 구역의 승객(고객)에게 자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리라는 겁니다.

담당구역을 지날때는 절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승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자신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스마일 '입니다.

자신이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담당구역을 돌아다닐때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는 승객과는 가볍게 목례를 합니다.

이것은 ' 손님 제가 항상 생각하고 손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라는 무언의 암시가 됩니다.


그 다음이 ' 가볍게 다가가기' 입니다. 두번 정도 눈을 마주치며 목례를 했다면 그 다음엔 인사치레 정도의 말을 건네는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 기내 온도가 적당한가요? ' '목이 마르시거나 하시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리시면 식사시간(또는 도착시간)입니다' 와 같이 간단한 대화가 좋습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내가 해 줄수 있는 범위의 일과 관련한 질문입니다.

무턱대고 ' 제가 도울일이 없을까요? ' 또는 불편한점 없으신가요? ' 라는 질문을 해서 고객이 진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 익숙' 입니다.

중 장거리 비행에서 최소 서너번 정도 eye contact, 목례, 가벼운 대화가 이루어지면 그 승객( 고객) 과의 관계에서 익숙함이 만들어지고 고객은 그때부터 나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심리학이나 새롭게 발전해가는 뇌과학의 다양한 발견에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우리 뇌는 ' 익숙' 함을 '안전' 함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도 그랬습니다.

처음 만날때 반갑게 인사 드리고 오며 가며 눈을 마주칠땐 목례를 드렸습니다 .

그러다 화장실 근처나 통로에서 그 승객을 마주치거나, 승객의 호출에 응대하면서 가벼운 대화나 농담을 하면 좋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이후 발생하는 불편이나 불만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협조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고객 만족보다 고객 감동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남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길것이라는 마음가짐만 확고하다면 불평이나 불만 보다 이해와 배려가 앞서 나옵니다.


항공기 탑승까지 힘든 과정을 거쳐 공항에 도착한 승객을 이해 한다면 고객불만이나 불편은 훨씬 줄어들겁니다.


하루에도 수백번 인사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던 그 동기 녀석은 이제 인사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주 멋있습니다.


오늘도 그녀석을 생각하면서 즐거운 비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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