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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23.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참견

자기일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쑥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하고 결정에 끼어드는 것을 참견이라고 합니다.

무슨 용기로 또는 자신감으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참견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갈등, 논쟁 또는 다툼이 되곤 합니다.


조선 후기 김삿갓이라는 방랑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시를 읽어보면 한(恨)이 느껴질 정도로 애잔함이 있기도 하고 예의 바르지 못하거나 허세가득한 사람들을 은근히 비꼬는 시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방랑을 하는지라 먹을꺼리 해결을 위해 가끔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끼어들어 참견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참견은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끔 통쾌 하게 여겨질 정도로 허세가득한 양반이나, 제대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시골 훈장, 또는 산속 절에 있는 심보가 나쁜 스님들에 대한 질책이 담긴 참견이었습니다.

그 분의 참견에는 유우머와 해학, 기지가 담겨 있는 참견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만나게 되는 승객중에 다른 사람의 일이나 행동에 참견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승무원들이 식사 서비스를 할때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meal choice입니다.

승객이 원하는 식사를 모든 승객에게 원하는 대로 제공할 수 있기를 늘 기원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승객이 원하는 식사를 승무원 식사 까지 제공하고도, 제대로 원하는 식사를 못하는 승객이 비행때마다 꼭 발생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 가운데 그룹 승객중 어떤분이 ,부족한 비빔밥을 선택하지 않고 쇠고기를 선택하였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쇠고기를 꺼내 주려는 순간 그 승객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일행중 한명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 아니. 최부장. 비빔밥 먹어. 쇠고기 말고 비빔밥 먹어. 비빔밥 맛있으니까 비빕밥 먹어. 저기 이사람 비빔밥 주세요~~" 쇠고기를 원했던 승객은 쇠고기 좋아하니 그냥 쇠고기 먹겠다고 재차 말씀 하시는데도 앞쪽에 앉으신 그 승객은

 " 아~ 비빔밥 먹으래두~ 비행기에선 비빔밥이 최고지~~비빔밥 주세요 이분."

도대체 이분은 왜 그러시는 걸까요?

결국 그분도 체념한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마음속에선 나도 모르게 한숨소리와 함께 속마음과 다른 미소를 보이며 반대쪽 통로로 달려가 비빔밥 하나를 가져옵니다.


참 이상하죠? 자신이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며 다른 사람의 결정에 관여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승무원의 서비스 방법니나 태도에 대해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지만 지적하시는 분이 꼭 그렇게 햐야만 할까? 라는 의문이 들때가 많습니다.


서비스 관련 학과의 교수란 분이 학교가 아닌 곳에서 그렇게 참견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교수는 학생에게 지도를 하면 될 일인데 비행기에서 지적하시곤 교수 직함이 적힌 명함을 제게 내밉니다.

그래서 제게 뭘 원하시는지 말씀도 않고 그냥 명함만 주시고 갑니다.

우리 회사에도 그분만큼이나 서비스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분이 많으신데 왜 자신의 학생만 가르치면 되실일을 굳이 명함까지 보이시면서 뭐라고 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인사할 때 손을 모으는 방법이 남자의 경우와 여자의 경우가 다른데 , 한때 어떤 승객이 잘못 손을 겹친 승무원을 보고 회사에 제언을 하는 바람에 모든 승무원들이 그 문제로 인해 신경아닌 신경을 써야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승무원이 몰라서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지적해 주시는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승무원의 실수를 모든 승무원에게 일반화시켜 개선을 요구하는 방법은 다소 무리가 아니었을까요?


참견은 사실 선(善) 한 의지에서 시작된다고 여겨 집니다.

상대방이 미숙하거나 잘 모른다고 판단될 때, 잘 알고 있는 내가알려줘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참견입니다.


지만 상대방에 대한 질책의 성격이나 지적의 모습을 띠면 ,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전문분야나 관심분야가 아니면서 자신의 경험에만 비추어서 하는 참견은 오지랖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오지랖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수 밖에 없습니다.

몇 년전 미국에 가는 항공편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 납니다.

당시 50대 후반 정도로 보였던 3명의 일행이 승무원 몰래 자신들이 가져온 술을 먹다가 약간 취했던 모양입니다.

그중 한명이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에게 한국인의 우수성을 알려주기 위해 한국식 영어로 자꾸 말을 걸었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그 미국인 옆에는 한국인 외항사 여승무원(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 앉아 있었는데 그 여승무원과 미국인 승객이 잠깐 영어로 얘기 하는걸 듣고 자신의 영어실력을 자랑도 할겸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술취한 50대 후반 아저씨의 영어가 미국인의 영어 실력과 외항사 승무원의 영어 실력과 비교가 되었겠습니까?

멈추지 않는 그 아저씨의 영어 발음에 대한 레슨(?)이 다른 두사람에게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했고 , 승무원의 요청과 제지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그 한국인 아저씨는 그 미국인과 외항사 여승무원에 계속해서 영어를 가르쳤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남자인 제가 나섰습니다.

" 손님, 술을 너무 많이 드셨는데, 승객이 기내에 반입한 술을 몰래 드시는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 취하신거 같은데 옆에 계신분 방해 하지 마시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사무장인 제가 말했는데도 그 한국인 아저씨는 계속해서 그 미국인과 외항사 승무원의 영어 발음을 계속 지적하더군요.

결국 좀 더 강한 톤으로 그 아저씨를 상대하면서 이 상태가 지속 되면 미국 입국에 문제가 될수 있다며 음주 소란 행위를 멈춰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분은 저에게까지 반말로 협박을 하게 되었고 , 반말을 들은 저 자신도 순간적으로 반말을 하며 싸움이 나게 되었습니다. 승무원으로서 그래서는 안되지만 참견이 참견을 낳아 싸움까지 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입국에 문제가 될까봐 술취한 그분 친구들의 중재와 주변 승객들의 만류로 상황은 종료 되었지만 저 자신 기분이 깔끔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착 전 술이 깬 그 분의 사과로 화해를 했지만 승무원의 신분이었던 제게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경험 이었습니다.


요즘은 항공 보안 관련법이 강화가 되어 기내 소란 행위가 크게 확대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승무원들애게 맡기고 신뢰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참견은 참견하는 당사자가 명확한 상황 인식과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때 해야만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참견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향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 개인적 성향이 사회적으로 또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면 결과에 따라 해결이 아닌 갈등이나 분쟁이 될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런 분들이 몇몇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 신분으로 정치나 정부 정책에 대해 매순간 간섭하는 분이나 , 이상한 이름의 연구소라는 가면을 쓰고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캐는 분들 말입니다.

그분들은 쓴소리러고 생각하시겠지만, 절제와 예의가 가미되지 않는 쓴소리는 그저 쓸데없는 참견이 아닐까요?


참견이나 간섭을 해도 개인적 명예나 이득을 얻기보다 공공의 선을 위한다면 많은 이들이 통쾌함을 늦기고 공감을 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의료인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잘 잘못을 따지면서 참견하기보다 지금은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비행기 안에서건 어디서건 참견 해야 할때 참견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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