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split Jun 25.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조종사

'아~난 왜 조종사가 될 생각을 못헸지?'

라는 생각이 승무원으로 입사 한 지 1년 정도 지났을때 갑자기 들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 내 적성은 아냐~' 였습니다.


몇년 전 서점에서 우연히 ' 비행기 조종 교과서' 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 야~ 요즘은 이런 책도 다 나오네?' 하고 지나쳤다가 일주일 뒤 결국 그 책을 샀습니다.

이후 비행 가서 호텔에서 정독을 했습니다.

그 책을 산 이유는 20년 이상을 조종사라는 사람들과 한 비행기에서 근무를 했는데 , 그들이 칵핏(COCKPIT, 조종실)에서 어떤일을 하고 어떤식으로 조종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럽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업무를 기계 조작 정도로 단순 이해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두번 정도를 정독하니 비로서 칵핏에 들어가서 그들이 다루는 기계나,보고있는 화면, 버튼이나 여러가지 스위치가 어떤 역활을 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론은 ' 내 적성엔 안맞아~' 였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조종사하면 그저 연봉은  많은데 비행기 조종실에서 편안하게 조종만 하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러워하는 반면에 하는일에 비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다고 시샘 내지 질투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각종 언론에서는 ' 고액연봉' 어쩌구 하면서 응원보다는 질책이나 비난의 기사 내용이 많습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봐온 저로서는 가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조종사를 우리는 기장, 부기장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CAPTAIN,PILOT, CO-PILOT,F/O(FIRST OFFICER)등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그들의 고충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들의 고액연봉이 부럽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의 고충 중 하나가 정기검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젊은 시기에는 잠을 많이 못자도, 술을 좀 마셔도,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비행기 운항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신체적 문제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관리나 습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정기검진에서 문제가 발견되어 비행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운동이나 음식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는 약간의 강박 관념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저에게 그 고통을 하소연 하신 기장님들에 의하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술을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몇년전 마지막 비행을 하시는 기장님과 얘기도중 여쭤 보았습니다.

" 기장님,은퇴하시면 젤 먼저 뭐가 하시고 싶으세요?"

" 사무장, 나 오늘 저녁부터 소주에 삼겹살 실컷 먹을꺼야. 벌써 마누라가 준비 해놨을꺼야.."

검강 검진에 첨 문제가 생긴 이후 좋아하시던 삼겹살과 소주를 15년 넘게 제대로 드셔 본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먹고싶은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고통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이야 퇴근 후 소주에 삼겹살이 일상일 수 있지만 비행으로 인해 십수년을 즐기지 못했던 삼겹살과 소주가 은퇴후 최고로 하고싶은 일이라니...


다른 기장님으로부터는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화물기 기장들은 비교적 긴 시간을 해외에서 보냅니다.

제가 신입 시절에 알게 된 어떤 기장님은 비행을 다녀오니 식구들이 이사를 하고 없더라는겁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막 나오던 시기였고 대부분 삐삐를 차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9박 10일을 다녀오는 동안 이사 날짜가 갑자기 앞당겨져 가족들이 먼저 이사를 하고 삐삐 음성 녹음을 남겼던 모양입니다.

 그 기장님은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갔더니 집이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야 음성메세지 확인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인터넷 발달 초기 시절에 마땅히 연락할 방법이 없던 사모님이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없었다면 그 기장님은 어찌 되었을까요?


우리가 운항 승무원들이라고 부르는 기장님 부기장님들을 연봉만 보고 판단한다면 그들의 고충은 쉽게 잊혀질수도 있습니다.

특히 기상이 좋지 않은날의 이륙과 착륙은 그들의 생명을 단축 할수 있을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에서 여수로 가는 항공편에서 세번의 착륙 포기 후 네번째 착륙에 성공하고 칵핏에서 나오시는 그 기장님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미 포기한 착륙으로 더이상 선택의 여지 없이 네번째 착륙을 해야하는 상황.

착륙 포기하고 다시 제주로 회항 했을 때 승객과 승무원으로부터 받게 될 불만이나 불평을 감안하고 그외에 회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를 불안감으로 활주로의 빗속을 뚫고 네번째 시도끝에 무사히 착륙한 기장님의 마음 고생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힘들것입니다.

제주 출발전 밝게 웃으시던 기장님이 여수 공항에 무사히 착륙 후 승객이 내리자마자 조종실에서 나왔습니다.

밝게 웃으시던 미소는 사라졌고 얼굴엔 핏기마저 없이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승객이 내린 빈좌석에 멍하니 않아 비내리는 유도로를 바라보며 10분 이상을 말없이 앉아 계시더군요.

달달이 커피 한잔을 만들어 드렸더니 그제서야 긴 한숨과 함께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의 넋이 나가 있으셨지만 우리는 다음 비행을 위해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비행하면서 그들을 보며 느꼈던 안타까웠던 점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COCKPIT이라는 좁은 공간에 두 남자가 함께 교대를 하지만 최소 7~8시간을 함께하고, 호텔에 도착 한후 함께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48~60시간 가까이 혼자서 지내야 하는 고독은 익숙해지지 않으면 위험해 질수도 있습니다.


개인사의 힘든일마저 함께 안고가야 한다면 해외에서의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갑니다.

저 역시 승무원중에 유일한 남자로서 몇년을 비행한적이 있었습니다.

함께 밤먹자고 여승무원에게 연락하기도 그렇고, 설사 밥도 먹고 술을 한잔 한다고 해도 모든 여승무원들의 속마음이 같이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액 연봉으로 그들의 고충을 상쇄 한다고도 할수 있겠지만 고액연봉보다 삶의 질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그들에겐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객실 사무장이지만 그들과 함께 비행을 하면 먼저 말을 걸고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안전 운항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하고 , 안전운항 이외의 고객불만과 같은 객실의 일들로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저 역시 그들의 업무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들과 소통하고 협력하고 배려하는것도 우리 승무원의 업무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에 비행기 승객뿐 아니라 운항 승무원들에게도 될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하려고 합니다.


곧 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나쁜 기상에도 고객을 목적지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려는 모든 운항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에게 비타민 한병씩을 보내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 타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