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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26.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승무원은 술을 많이 마신다.

아니, 마셨었다.

지금은 여러가지로 인해 음주를 위한 장소와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과거에는 많이 마셨었다.

나는 여자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걸 대학때도 보지 못했는데, 승무원이 되고나서 팀원들인 여승무원들이 술을 마시고 빈캔과 빈병을 호텔방 벽을 따라 줄을 세우는 걸 보고 기가 막히는 경험을 하곤 했다.


대학 때 운동권 출신 여학생이 막걸리를 동이쩨 먹을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운동권 학생들이 모두 술을 많이 마셨다는 뜻은 아님^^) , 유니폼 입는 천사가 그렇게 술을 잘 마시리라곤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유니폼 입었다고 해서 모두 다 이쁜 하늘의 천사라는 뜻도 아님^^)

심지어 맥주와 와인은 물론이고 양주까지 거침없이 마시던 나의 신입시절 선배 여승무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알수없는 전율이 느껴진다.


승무원들에게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하면 끝이 없을것이다.

대학시절 우리에게 가장 흔했던 OB 맥주 이외에 외국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맥주가 각양각색의 맛으로 우리들을 유혹했으니,...  20대 후반의 당시의 나에게는 호텔에 도착한 후 마시는 한캔의 시원한 맥주는 지리산 백두산 산수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한 시원함을 주었다.

아는 선배나 동기 또는 후배가 해외 체류 시간이 겹치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어김없이 맥주 한박스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기다리곤 했다.

결국 비행의 피로는 잊은채 알딸딸한 상태로 잠이 들어 다음날 숙취로 힘들어 하곤 했었다.


그러던 음주 문화가 승무원 조직이 점점 커지고 구성원의 성향도 다양해지면서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잦아졌다.

결국 자연적으로 음주에 관한 규정, 징계가 강화되었고, 해외에서 만나는 반가운 선배 후배와의 만남이 간단한 식사한끼로 해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술에 대한 내 추억중에 첫번째는 신입시절 와인 한잔하자는 팀장님의 얘기를 듣고 대충 씻은 뒤 팀장님 방으로 향했다.

여승무원들과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보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 하셨던 그 팀장님은 와인 두병을 준비해두고 계셨다.

술에 안주가 없으면 화를 낼 정도인 내가 팀장님께서 준비를 한 와인 안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나갈뻔 했다

와인 두병에 안주라고는 삼각형 모양의 엄지 손가락만한 치즈하나..

룸서비스가 있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룸서비스는 끝내 벨을 울리지 않았다.

와인 안주엔 치즈가 최고라며 예찬까지 하시던 그 팀장님은 끝내 와인을 다 드셨다. 치즈 한조각을 안주삼아서 ....

대학때까지 막걸리와 소주로 기록된 내 음주 역사에 고급스런 와인이 들어서는 순간,당시의 안주는 치즈 한조각... 그래서 난 지금도 와인에 치즈 곁들여 한잔하자고 하는 여승무원들을 보면 ..그냥 웃고 만다.


또 하나 재밌는 추억은 음주에 관한건 아니지만 술에 관한 내용이다.

술에 관한한 엄격한 규정이나 관습을 적용하는 곳이 중동이다.

목적지가 '사우디 제다' 였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그곳은 입국할때 술은 물론이고 여자의 피부가 노출된 사진이 있는 잡지 조차도 반입이 안된다.

그래서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모든 카트(특히 술이 들어있는 카트)를 씰(seal)로 잠궈야 하고 기내잡지에 있는 여성 광고모델 사진 때문에 잡지를  모아서 한군데 보관해야만 했았다.

도착전 안내 방송을 하고 착륙 준비를 하는데 승객 한분이 나에게 문의를 했다.

" 저,  먼저 일하러간 친구가 소주를 가져 오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세관 통과 할때 문제 없겠죠?"

비행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로서는 부팀장님께 보고를 드렸고 부팀장님께서는 해당 승객과 얘기를 나누시더니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돌아 오셨다.

" ㅇㅇ 씨 , 소주 60팩 보관할 공간 좀 확보해봐~~"


해당 승객은 친구 말만 드고 60개의 소주팩을 가방에 넣어 왔고, 입국 규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1년뒤에 귀국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 아까운 60개의 소주팩은 우리 승무원에게 양보하셨던 것이다.

물이라고 얘기하면 된다는 친구말만 듣고 온 자신을 탓하며 비행기가 도착 한후 쓸쓸히 내리셨다.

술을 좋아하시던 부팀장님께서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카이로에 도착하실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시고 싱글 벙글하셨다.

호텔에 도착해서 부팀장님께서는 5개만 가져가시고 나머지 55개의 소주팩은 나와 팀 여승무원 6명이 , 우리가 준비한 맥주와 안주와 함께 하룻 밤새 없애 버렸다.,지금도 쓸쓸히 내리시던 그 승객을 생각하면 감사함과 미안함이 겹쳐서 느껴진다.


람사는 아니 , 조직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만들때 술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일 수도 있다.

인류 최고의 발견 및 발명이 술이라고 말하는 인류학자도 있듯이 술은 인간 문명에서 배제 할수 없는 물건임에는 분명하다.

과하면 분명 문제가 생기지만 적당하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술.


과거 호텔 도착후 여러명이 모여 마시던 그 술과 시간들.

지금은 비록 그리운 순간들로 남아 있지만 사랑스러운 후배들은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승무원 문화를 만들고 있을것이다.


내가 술을 좋아 하는 이유는 술을 생각할때마다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모를 ...그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록 혼자라도 낮술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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