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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28.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수다 에너지

' 우리의 수다는 멈추지 않는다'


말이 많은 사람들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역설적이게도 수다떨기에 있지 않을까?

여자들이 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상식이다.(요즘은 남자도 말이 많다는 생각 ^^)

거울속에 있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 그 이름은 여자다.

말이나 수다에 대해서는 부정적 표현이나 고정 관념이 많은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는데, 결코 좋은 습관은 아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지만 지루거나 했던말을 다시하는게 아니라 했던말을 더 재미있게 하거나, 평상시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하기때문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확실치 않지만 믿고 싶은 사실임)


여승무원들도 여자이기에 말이 많다.

말중에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고 호기심 있는 얘기도 있지만 남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가쉽거리에 대한 얘기는 사람을 거쳐가면서 확장되고 과장되는 경향이 있지만 , 그만큼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연예인들에 관한 이야기, 연애에 관한 이야기, 쇼핑에 관한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부터 자기계발에 관한 이야기, 결혼에 관한 이야기,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심지어 깊은 고민에 관한 이야기까지, 여러가지 소재와 주제를 넘나들면서 끊임이 없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승무원은 이 많은 이야기를 언제 할까?

바로 승객들의 휴식을 위해 객실 조명을 어둡게 하면 우리들의 수다는 시작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사를 하다가 시작된 수다는 교대로 하는 휴식 시간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승객들이 본격적으로 잠들기 시작하면 승무원들의 업무공간인 갤리에서 두른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끔은 깔깔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시작된 수다는 기본적으로 한시간을 훌쩍 넘기고 잠에서 깨어난 일부 승객의 호출이 시작되면 잠시 멈추게 되지만 이후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은 예민한 승객들의 불만 제기로 많이 조심하지만 수다를 떨지 않으면 수면에 대한 욕구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 승무원들은 비행이 끝나면 몸이 피곤한게 아니라 입이 피곤한 경우가 많다.


승무원들의 수다는 비행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버스안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쪼인(join) 된 다른 팀 승무원들이야 눈을 감고 잠을 청하게 되지만 비행기에서 시작된 수다는 멈추지 않는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일부 소그룹으로 만나 방에서 간단하게 맥주 하면서 나누는 수다는 어느새 습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년 넘게 비행하면서 나 역시 수다에는 일가견이 생겼다.

남자가 말이 많으면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비행내내 과묵하게 무게를 잡고 비행하는 것보다 그나마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는게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경험에서 체득한 건강 지론이다.


멈추지 않는 수다에는 이상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거의 비행이 없던 승무원들이 가끔 비행에서 만나는 예전 팀원이나 선 후배 승무원을 만나면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발견한다.

승객들이 잠든 시간 ,시차로 인한 피로와 수면 욕구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유일한 생체 활동은 수다일 수 밖에 없다.

커피나 차를 마셔도, 가볍게 몸을 풀어도, 다음 서비스를 준비해도 그때뿐.. 졸음이나 피로를 극복하기는 쉽지가 않다.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고, 휴식을 다녀와서 두번째 서비스가 끝나면 어느새 착륙 시간이 돌아온다.

그러면 우리의 생체시계는 어느새 도착지에 대한 기대 내지 안도감으로 다시 힘을 받게 된다.

가끔 승무원이라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승객들이 잠을자는 시간에도 함께 깨어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중에 한명 정도는 수다를 시작하고 수다를 이끌고 수다를 즐겁게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부기장이 비행을 끝나고 호텔로 이동하는 중에 나한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 사무장님은 좋으시겠습니다. 비행이 즐거우셔서.. 전 오늘 비행내내 기장님과 거의 업무적인 지시나 명령이외엔 한마디도 못했는데.."

" 부기장님~~ 담엔 콜 주세요. 제가 조종실 들어가서 잠시라도 말동무 해 드릴께요"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면서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만큼 고역인 것은 없다.

물론 오랜 시간 함께하다보면 말이 없어도 편안한 관계가 될수 있지만 잠시 잠깐 만나고 함께하는 관계에서는 수다가 최고의 약이 아닐까?


나는 서비스는 잘 한다고 할순 없지만 , 말로하는 립(lip) 서비스는 10시간도 할수 있다.

그래서 식사를 기다리는 승객에게 우아한 서비스를 하려고 하기보다 지루해 하는 승객에게 재미있고 즐거운 서비스를 하기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는 편이다.


수다를 떨며 얻게 되는 이상한 에너지가 25년을 즐겁게 비행하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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