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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l 02.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햄버거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이라고 묻는다면, 내 경우엔 라면과 햄버거가 아닐까 싶다.

이유를 따지자면 간편함과 비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차가 맞지 않는 해외에서도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여승무원들은 각종 간편한 간식들을 가지고 다니지만 검역이 까다로운 나라에 갈 때는 간식 챙기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라면도 컵라면 정도가 요즘의 대세지만 나름 뜨거운 물이 필요해 가끔은 포기하고 배고픔을 참는다.

하지만 햄버거 정도는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호텔 룸서비스 메뉴로 자리 잡고 있고, 호텔이 시내 지역에 위치 해 있으면 햄버거 가게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자주 먹는 음식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체류 호텔이 시 외곽에 위치한 곳이 많아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비치된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에 우리 승무원이 체류하는 로스엔젤레스 호텔 가까이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마주 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화의 조류에 발맞춰 맥도날드가 ' 골든아치'의 별명을 내세워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이었다.

대학시절 가끔 먹었던 맥도날드에 익숙한 나로서는 햄버거 가게는 맥도날드 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만큼 흔히 만나는 브랜드였기에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하면 잠들기 전에 늘 햄버거 하나를 먹곤 했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몇 기수 차이가 나지 않는 선배와 함께 호텔 도착 후 옷을 갈아 입고 햄버거를 먹으러 나갔다.

당연히 나는 맥도날드 쪽으로 방향을 잡아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는데 순간 그 선배가 " 야~ 승무원은 버거킹이지~~" 라고 말하며 길 건너 버거킹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버거킹이 아직 익숙지 않았던 당시에는 햄버거에 관한 한 버거킹은 짜가( 요즘 말로 짝퉁)느낌이 강해 잘 가지 않았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햄버거 하면 '버거킹' 을 일 순위에 두게 되었다.

아마도 익숙한 맥도날드보다 조리 방식이 약간 다른 버거킹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한국에서는 버거킹이 다소 희소성이 있는 브랜드라 해외에 자주 나가는 승무원 입장에서는 희소성(당시의 기준) 이 있는 걸 먹어줘야 승무원 다 운 거라 여겼다.


미국에 도착하면 거의 한국시간으로 아주 밤늦은 시간이거나 새벽이었기에 젊음이 아니었다면 그 시간에 햄버거 세트 하나를 먹고 잠을 청하는 것은 건강에 무뢰한이 되는 것이었다( 승무원이 되면 살이 찌는 이유 중 하나)

가끔은 여승무원들도 따라오곤 했는데 이쁜 미모에 가려 숨겨져 있던 그녀들의 살들은 몸매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짬뽕이냐 짜장이냐를 고민하듯, 버거킹이냐 맥도날드냐를 고민하던 일들이 이젠 거의 사라져 버렸다.

해마다 신입 승무원들이 들어오고 승무원들의 문화를 그들이 주류가 되어 이끌어 가면서 해외에서 먹는 음식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동남아 음식에 대한 승무원의 자세가 엄청나게 바뀌었다.

예를 들면 당시 우리 팀 최 선임 승무원은 동남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 방콕이나 베트남에 가면 가져온 음식이나 테이크 아웃한 햄버거 외엔 입에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방콕 5박6일 스케줄을 끝내고 한국에 오기 위한 비행을 위해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얼굴이 퀭할 정도로 여위어 있었다.

뜻하지 않은 다이어트 효과는 한국에 돌아가면 원상 복귀하겠지만 , 그 정도로 동남아 음식에 대한 기피 경향이 대부분의 승무원에게 있어서 공통 현상이었다.

특히 베트남에 처음 체류할 때는 점심을 먹기 위해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 롯데리아' 에 갈 정도였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동남아 여행 경험이 많은 신입 승무원들이 점차 들어오면서 태국과 베트남 음식의 맛이 승무원에게 전파되면서, 이제는 승무원들이 좋아하는 스케줄이 되었고, 베트남의 사이공이나 하노이에 가면 현대식 인테리어로 꾸며진 쌀국수 체인점을 찾아가는 것이 비행의 일 상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 예전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보았던 베트남 '분짜'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걸 보면 승무원들의 식문화도 세계화를 탄게 분명하다.


이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의 음식문화도 바뀌었는데, 과거에는 팀 전원 또는 여러 명이 몰려다니면서 식사를 했었는데 지금은 달라진 체류 환경으로 개별적으로 또는 두 세명이 모여 배달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해외 체류 시간이 줄어들면서 먹는 것보다 휴식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호텔 룸서비스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최근에는 여러 승무원들이 어울려 외출이나 투어를 가서 먹기보다는 혼자서 우버잇츠나 룸서비스로 먹는 걸 선호하는 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버거는 포기할 수 없는 메뉴 중에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로스엔젤레스 호텔 앞에 있던 두 햄버거 가게는 어느 날 사라져 버렸고 퓨전바(bar) 와 편의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특히 요즘 유명해진 '쉑쉑 버거'는 일부러 찾아가서 먹을 정도이니, 버거킹과 맥도날드에 익숙한 우리 같은 쉰세대들은 그들과 함께하기엔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들을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하기엔 너무도 달라진 환경과 경험이 가끔 소외감을 느낄 정도다.


어쨌든 해외 생활에서 유일하게 입맛에 맞아 즐겨 먹었던 햄버거 가게들이 과거의 영광을 서서히 놓아 버리고 사라지는 지금,  어쩌다  호텔 창문 밖에서 발견하는 골든아치(맥도날드 간판 모양)에 반가워 소리칠 정도다.

언젠가 라스베가스 호텔 창밖으로 '~~KING'이라는 네온사인을 보고 달려 나갔다가 'PARKING' 이라는 전체 간판보고 혼자서 몰래 창피해하며 돌아왔던 기억은 승무원 브리핑할 때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햄버거는 내가 좋아하는 주식이기도 했고 간식이기도 했는데 이젠 추억의 먹을거리로 바뀌어 버렸다.

패스트푸드라는 이름으로 건강이 중요시되는 요즈음에 나쁜 음식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특히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해로운 음식이며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음식은 이름 그대로 변함이 없는데 그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변하였으니, 역시 람은 간사한 모양이다.

미국 서민 음식의 대표주자였다가 서민 건강의 최대의 적이 되어가는 햄버거.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특히 유년기에는 거의 햄버거를 먹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중 고생이 되어서도 햄버거보다는 요리한 음식을 더 좋아한다.

한때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다녔으니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배달 음식의 주문이 편리해지고 더욱 다양화 해질수록 햄버거는 점점 사라질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비만과 고혈압, 당뇨등의 현대인의 고질병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시차가 맞지 않는 해외에서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 허기를 달래게 해 줬던 그 햄버거 가게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햄버거 세트 메뉴를 사 가지고 호텔에 돌아와서 맥주 캔을 딴다.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 마시고 감자튀김을 먹고 난 후 마음을 다 잡고 햄버거를 베어 물면 건강이고 뭐고 생각 없이 포만감에 행복해한다.


여전히 나는 우버잇츠가 낯설다.

여럿이 모여 수다를 떨면서 마시는 맥주와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좋다.(마누라가 이 글 보면 난리 날 텐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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