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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l 07.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그릇과 그릇이 부딪히면..

사람 사는 세상 ...싸움이나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둘만 있어도 이야기가 시작되고, 때론 웃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데,.. 300에 가까운 사람들을 밀폐된 공간에 태우고 저 높은 하늘을 10시간 이상 날아가는데 어찌 다툼이 없고 웃음만 있을 수 있을까...


그릇과 그릇이 부딪히면 시끄럽거나 깨질 뿐,..

한쪽이 작아지거나 넓어지지 않으면 그릇은 포갤 수 없다.

계속해서 부딪혀서 시끄럽게 되면 결국 둘 중 하나가 깨지거나 양쪽이 다 금이 갈 수밖에...

나를 낮추고 겸손을 실천하면 상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고, 내 그릇을 크게 하면 상대의 지적이나 원망, 또는 실수를 내 안에 품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릇에 금이 생기거나 깨지지 않는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깨닫게 된 이 지혜는 상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는 늘 갈등과 다툼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 갈등의 불씨를 우리는 늘 인지하고 있다.

즐겁고 안전한 비행을 위해서는 밀폐된 공간인 비행기에서 생길 수 있는 이러한 갈등과 다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으며 , 미래에도 사라지진 않을 듯하다.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바로 상대에 대한 매너다.

매너라고 해서 아주 거창하고 격식 있는 것이 아니라, 브리핑 때 먼저 인사하거나, 지시나 요청을 할 때 반말을 하지 않거나, 서로 간의 업무에 대해 존중을 해주는 기본적 예의만 갖추면 지금 발생하는 갈등이나 논쟁, 다툼 등은 거의 사라질 수 있다.

두 직종 간의 갈등의 원인은 하는 일의 차이와 경험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 부족이 결정적이다.

개인적 해석에 따라 옳고 그름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결론을 내리긴 무척 어렵다.

나 같은 경우는 늘 먼저 인사하고, 불편한 점이나 요구 사항이 있는지를 먼저 운항승무원에게  물어보고, 양해가 필요할 때도 먼저 의향을 물어보니 20년 이상을 비행하면서 그들과 거의 문제가 없었다.

가끔 우리 승무원의 실수나 무성의로 인해 그들에게 내가 직접 사과를 한적은 몇 번 있었다.

단 한번, 반말 때문에 기장과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는데 원인은 그 기장에게 있었다.

평소 부기장들에게도  평판이 안 좋았던 그 기장은 첫 대면 시 우리 승무원들의 인사에도 대꾸가 없었고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이 없이 자기 말만 했다.

자기감정에 휩싸여 상대의 인사를 무시하고 주관적 판단으로 상대를 자기 부하나 아랫사람으로 대하며 반말을 하니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망만 받을 뿐이다.

결국 반말로 응대하는 나에게 화들짝 놀래며 여승무원에게 사과까지 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왔다.

겸손이 부족하거나 몸에 배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반말을 한다.

자기 지위나 직책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의 원인인 반말은 상대에 대한 존중심마저 결여되어 있다.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말(言)이라는 것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덕목이다.


객실 승무원 간에도 갈등의 상황은 많다.

입사 시기에 따라서 선배와 후배가 되는데 문제는 나이다.

승무원이 되기 이전에 다른 일을 하다가 늦게 입사한 사람은 당연히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선배로 대우해야 한다.

또는 같은 해에 같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입사가 달라 학교 동기가 선 후배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학교에선 후배였지만 회사에서는 선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표면적으로 서로 눈치를 보는듯해도 사소한 일로 갈등이 쌓여 결국에는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어리석은 집착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상황에 맞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따질 수 있겠지만 , 그래 봐야 부족한 자신의 인품만 드러날 뿐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나보다 서 너 살은 어린 여승무원 선배들이 많았었다.

호칭조차도 선배라고 부르기 껄끄러워서 '저기요~~ 누구누구 씨~~'라고 불렀더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물론 좀 친해지고 나면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갈등이 생겨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남승무원 후배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승무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선배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승무원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갈등과 다툼 속에서 살고 있다.

승객과 승무원 간의 갈등, 승객과 승객 간의 다툼..

심지어 가족이나 친지들 간에도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다.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낯선 사람들 간의 갈등과 다툼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사를 하지 않거나 무시하거나, 느닷없이 반말로 대꾸 하거나, 헤어지면 잊어버릴 선 후배 관계를 엄격히 따지려고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허세로 인해, 우리는 늘 갈등하고 다툰다..


한정된 공간에 그릇들을 보관하려면 겹칠 수밖에 없다.,작은 그릇이든 큰 그릇이든 함께 두려면 큰 그릇 안에 작은 그릇을 겹쳐야만 한다.

상대가 작거나 크지 않으면 함께 겹쳐질 수가 없고 부딪치다 보면 시끄러워지고 깨질 수밖에 없다.

결국, 상대를 바꾸기 어려운 것을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이 바뀔 수밖에 없다.


내 그릇을 크게 또는 작게 바꿀 수 있는 인내, 또는 이해와 배려 그리고 겸손이라는 인품을 갖추지 않으면 상대가 깨질 수 있고 나도 깨질 수 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이런 인품과 유연성을 갖추지 않으면 늘 깨지기 쉽다.


(나는 오늘도 마누라를 대상으로 이런 인품을 갈고 닦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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