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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l 13.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미스터 선샤인...

코로나로 인해 뜻하지 않은 ''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아침, 점심, 저녁의 시간이 익숙지 않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하루하루 일상이 협탁 위의 알람시계처럼 가깝게 다가옵니다.

몸과 마음이 휴식에 젖어 지루함이 찾아 올 즈음 책만 읽던 나만의 시간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산책과 운동이 아닌 뉴스 보기에만 이용되던 TV가 살며시 내 생활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해보지 못했던 감성 충전의 사치를 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비행하는 동안 즐겨보지 않던 TV 드라마를 넷플릭스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내 시선을 끌었던 제목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몰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으로 인한 궁금증으로 당시 본방을 사수하고 싶었지만,  비행으로 인 드라마의 연속성을 지켜내지 못할 것 같아서 시청을 포기한 드라마였습니다.

평소 역사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오던 터라 마지막 조선의 임금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뜻하지 않은 코로나 19로 인해 씁쓸한 기분으로 몰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 '몰아보기'가 승무원의 습관(?) 이 된 것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었고 평소 드라마 방송 시간 주로 외국에 있는 경우가 많은 승무원들에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보편화는 지루한 해외 체류시간의 한줄기 빛이 되었습니다.

승무원의 장점인 해외여행도 신입 초기부터 3년 정도가 되면 시들해지기 시작하다가 이후에는 힘들게 느껴지는 상황에서,30시간 이상을 있어야 하는 해외 체류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인기 드라마를 몰아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취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출산을 한 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한 여승무원들은 해외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거의 드라마를 보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행을 핑계 삼아 해외 호텔방에서 육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드라마를 보면서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치유 행위의 절정은 드라마를 보고 난 이후 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다른 승무원과 수다를 떨고 드라마 내용을 공감할 때였습니다.

한때 남승무원이 부족하여 나 이외에 남자가 한 명도 없는 비행 생활을 했었는데, 같이 밥을 먹다가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내용을 가지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내용을 모르는 저는 그저 눈만 껌뻑, 고개만 끄떡, 맥주만 한모금...

정말 승무원들의 해외 생활이 드라마 몰아보기로 유행을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최고 절정은 남자 배우 공유 주연의 '도깨비'인 것 같은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저는 그 드라마가 공포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공포 드라마를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팀장 입장에서 물어보기도 뭣하고 해서 듣기만 했는데,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랑이야기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 응답하라~' 시리즈를 포함 다수의 드라마가 여승무원들의 해외 생활을 나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왜 하필 드라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예능은 보고 나서 수다나 공감, 공유의 소재로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드라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거의 불법적으로 파일을 다운로드하여서 몰아서 보던 영화나 드라마를 이제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한 거 같습니다.

과거 제가 첨 입사하고 해외 비행 갔을 때 투어를 가지 않는 승무원들의 주된 소일거리가 신문이나 잡지를 정독하거나, 조금 소박하지 못한 소일거리로 화투나 카드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1년 조금 지났을 때 함께 가시는 팀장님께서 제게 물어보신 첫 질문이 ' 고스톱 칠 줄 알아? 아님 훌라(카드게임)는?'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런 종류의 질문은 해서도 안되지만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해외에서의 시간은 승무원 개인의 시간이라는 인식으로 확연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인터넷의 발전이 승무원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때 '미드'(미국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랑이야기보다 정치색을 띤 액션 첩보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서 정말 20시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매회 궁금증으로 끝내는 드라마 특성상 완결 편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아서 미친 듯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투어 나가는 것도 귀찮고 책 보는 것도 답답하고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을 땐 영화나 드라마를 다운로드하고 해외에 비행 나가면 하루 종일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간식을 먹으며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최고의 취미였습니다.

운동도 하지 않고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여승무원과의 수다에서 조금은 공감을 하게 되었지만 불어나는 체중과 둔해지는 움직임은 게으른 꼰대로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어떤 계기로 다시 운동을 취미로 삼게 되고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골고루 읽으면서 드라마 '몰아보기'의 중독(?^^)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꼭 산책을 하는 습관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승무원 생활을 은퇴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하려면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지금도 후배들에게 건강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면 비행이 힘들어진다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가끔 만나는 현지인을 생각하면 이방인의 정서를 느끼곤 합니다.

호텔 직원이나 현지 슈퍼마켓 또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그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눌 때도 이방인으로서의 낯섬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말투나 시선에서 느끼는 이상 야릇한 느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의 주인공이 느낀 이방인에 차별이나 소외 정도는 아니지만, 늘 해외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승무원들은 쉽게 외로워지거나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개인화 경향이 강해지는 승무원 사회의 변화도 막을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늘 선샤인 아래 빛을 발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마누라가 출근한 다음에 TV를 켜고 넷플릭스에 접속해 ' 미스터 선샤인'을 몰아볼까 합니다..

여보~~~ 늦게 와도 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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