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split Jul 17.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배가 고플 땐 밥을 먹지만 마음이 고플땐...

살아가면서 하나하나씩 배우는 것들은 인생이라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나름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능 역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버릴 수 없는 인간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 중에 하나가 눈물인데 슬플 때 흘리는 눈물과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의 색깔은 같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 중에 눈물의 맛이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평범한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경험상 슬플 때 흘리는 눈물과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의 맛은 다를 거라 여겨집니다.


감정의 동물인 우리 인간들도 다른 동물들처럼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음식이 주는 평안함이 마음까지도 배부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데 마음이 고프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20년 이상을 비행하면서 보고 들으면서 배운 것도 많지만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약을 먹거나 바르고 푹 쉬기만 하면 낫는데,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 약으로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나 병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이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했던 친구 일수도 있고, 심지어 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흔히 새로운 인간관계로 치유할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가끔 다른 것으로 위안받으려 합니다.


그중 하나가 술 입니다.

술에 대한 예찬은 과거나 현재나 미에나 여전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처음 술을 마실 땐 마음이 고파서 마셨던 게 아닙니다.

남자로서 허세에 대한 욕구 때문에 마시기 시작한 술이 나이가 들면서 허세보다는 힘들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마시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기쁜 일로 마셨던 술이 어느 정도 취하면 많은 것이 생각나면서 마음을 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무언가를 잊으려 마셨던 술이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니, 술이란 결국 배가 고파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마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술 마시자는 핑계로 만나는 것도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내가 아는 승무원 중에는 술을 좋아하고 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고파서 그들을 만나 한잔 술을 나누면 그동안 허전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살짝 치유되곤 합니다.

그래서 해외 호텔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감추었던 내 마음들을 한잔 술에 흘려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술이란 게 치유만 하는 게 아니라 과하게 되면 내 몸과 마음을 오히려 망칠 수도 있으니, 위로만 받고 적절한 때에 절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술 말고도 마음이 고플 때 택할 수 있는 치료제가 또 있습니다.


마음이 고플 땐 여행도 좋은 치료제가 됩니다.

가방을 싸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여행의 기대와 설렘으로 뛰기 시작하고, 문을 나서는 첫걸음부터 여행의 효과는 시작됩니다.

공항이나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에서부터 내 마음은 조금씩 느긋해지고 평안해지며 , 모든 마음의 짐을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지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면 감춰졌던 마음속 잠재력이 날개를 펴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용기로 그 두려움을 잡듯이 사람으로 인한 마음의 병은 사람을 만나서 치유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여행은 마음이 고플 때 최고의 치료약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플 때 선택할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음악입니다.

음악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장르에 상관없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은은하게 음악이 흐릅니다.

그 음악은 여행에 들뜬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게도 하고, 여행의 기대감을 한껏 부추기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 아픈 일로 비행기에 탄 사람의 마음을 더 슬프게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을 더 기쁘게 하기도 합니다.

음악이란 사람의 영혼을 위한 수프이기도 합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음악은 그 사람을 평생 따뜻하게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모라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한 가지 음악 정도는 가리키는 게 재물을 물려주는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 치유를 위해 저 개인적으로는 독서를 추천합니다.

습관이 되기엔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성의만 있다면 마음이 고플 땐 최고의 묘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언어를 알아서 여러 가지 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독서의 혜택은 몇 곱절 커집니다.

어릴 적 글로 된 책 보다 만화를 더 좋아해서 지금은 사라진 '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버틴 적도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로 시작된 독서 습관은 승무원이 된 이후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비행 가는 가방엔 늘 3권 이상의 책이 들어가 있었고 나이가 들면서 평생 읽지 않을 것 같던 고전과 인문 서적을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는 마음이 고파지기 전에 면역을 키우게 만들었고, 웬만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책은 마음의 양식' 이라고 했던가 봅니다.


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났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가끔 마음의 허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허기를 채우는 방법을 몰라 애꿎은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화를 내며 잘못된 방법으로 허기를 채웁니다.

생활에 쫓겨도 배고픔은 채우면서도 마음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 까닭입니다.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하며 , 때론 내가 있던 곳을 훌쩍 떠나 낯선 이와 얘기를 하는 것, 책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찾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이 허기진 마음을 달랜다는 것...

그래서 인생은 살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면 평소에 보지 못한 구름 위 파란 하늘을 봅니다.

파란색 도화지에 그동안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상상 속에서 그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풍요를 느낍니다.


저 먼하늘 비행기가 눈에 들어오니 곧 다시 비행기를 타고 승객들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 타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