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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l 19.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고객은 무엇에 감동하는가?

서비스 현장 실무자로서 늘 머릿속에 펼쳐놓은 용어가 '고객 만족'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객을 생각하는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광고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방송되고 있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면 볼 수 있는 대형 입간판에도 고객 만족을 외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이면 고객만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개인도 단체도 기업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젠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의 시대가 되었는데 제대로 된 고객만족 또는 고객감동의 방법은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객실 승무원으로 입사하여 초기에 받은 교육이 인사와 예절이었습니다.

무뚝뚝하다고 알려진 전형적인 경상도 싸나이가 여승무원 동기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강사의 지시에 따라 '안녕하십니까~~~(마지막 톤은 밝고 경쾌하게 살짝 올려줌.ㅋㅋ)' 를 시작으로 5대 접객 용어를 외치려니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지 부조화'를 생전 처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방의 벽이 거울로 되어 있는 서비스 아카데미 실습실에서 드러나는 저의 팔자걸음은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오로지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서비스맨이 되기 위한 예절 및 친절, 그리고 인사와 스마일 교육은 경상도 남자의 체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고객 만족의 첫걸음이 인사와 예의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행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깨닫게 되면서 ,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내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낯설거나 익숙한 제안이나 시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진심을 담아 고객을 위해 실천하면 고객만족과 고객 감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진심이 섞이지 않은 형식이나 기교만 부리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객의 의심과 불신만 쌓게 되어 결국, 고객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것만 명심해도 현장에서의 고객 불만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중동의 어느 도시에서 귀국하는 편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클래스로 운영되었던  그날 비행 편에 모 재벌그룹 회장님이 탑승하신다는 정보를 미리 받았습니다.

그 회장님을 포함해서 일등석에 3명의 승객이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또 한 명은 편승 기장이었습니다.

당일 비행기 기종 특성상 일등석이라 할지라도 2+2+2 형태의 좌석 구도로 한 줄만 일등석으로 되어 있어서 실제 일등석이라고 할 만큼의 쾌적성을 장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이등석인 비즈니스 클래스는 좌석도 24석이고 전체 공간도 일등석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게다가 당일 이등석인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예약 승객이 3명이라 , 쾌적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일등석보다 더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탑승이 시작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등석 승객이 발생(go-show)하여 좌석 배정을 하였는데 현지 수속 담당 직원이 재벌 그룹 회장님에 대한 정보 숙지가 다소 부족하여 그 회장님 옆좌석에 go-show 승객을 배정한 것입니다.

일등석이라 해도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10시간 가까이 비행한다는 것은 결코 편안하지가 않은 기종이라 VIP 승객인 그 회장님의 반응이 어떨지 너무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외국인이 옆자리에 착석하자 회장님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지셨고 담당 여승무원의 환영 인사에도 무표정한 반응이셨습니다.

서둘러 공항 지점장을 호출하여 상황을 알리니 공항지점장은 거의 영혼이 달아난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저한테 " 사무장님 , 어떡하죠? 큰일이네. 그렇다고 이미 착석한 외국인 승객을 다른 자리로 옮기기도 그렇고..사무장님, 어떡해야 하죠?"

정말 황당하였습니다.

문제를 만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저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하니....


마음을 가다듬고 진심을 담아 그 회장님께 말씀을 드려보는 게 좋을 듯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어차피 옆에 앉은 외국인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회장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 회장님, 좌석배정에 대해 저희 직원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이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는 승객이 3명인데 비해 좌석은 21개가 남아 있습니다. 기종 특성상 일등석 좌석과 이등석 좌석 설비의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제 판단으로는 회장님께서 공간이 넓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옮기셔서 쉬시는 게 훨씬 좋으리라 여겨집니다. 서비스는 일등석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거절하셔도 좋지만 회장님을 생각하는 저의 진심에서 나온 제안입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회장님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도 되었고, 무슨 배짱으로 일등석 회장님에게 이등석으로 옮기는 게 좋다는 말을 할 용기가 생겼는지...하지만, 그 회장님께서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살짝 돌아보시고 흔쾌히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짐을 들고 좌석을 옮기신 회장님은 의미를 알 수 있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저에게 다른 부탁을 하셨습니다.

" 여기 비빔밥이 안 실린다고 들었는데.. 한식이 먹고 싶은데 어쩌죠?"

또 한 번의 재치를 발휘해야만 하였습니다.

" 회장님 ,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빔밥 정도는 아니지만 저희 승무원들이 라면과 생가락국수를 섞어서 해 먹는 '라우동'이라는 메뉴에 한식 반찬과 햇반을 곁들여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은 웃으시며 긍정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갤리에 돌아오니 담당 시니어 여승무원은 나를 미쳤다고 하고 공항 지점장은 자길 살려줬다고 난리였습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할 때쯤 회장님께 인사를 하러 다가갔더니 회장님께서는 정말 환하게 웃으시며 " 사무장님, 덕분에 오늘 정말 편안하게 잘 왔어요. 잠도 잘 자고.. 고마워요~~"


난 지금도 그 회장님을 신문이나 뉴스에서 가끔 봅니다.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모시지는 않았지만 일개 사무장의 무례할 수도 있는 제안을 경청하신 그분의 인품은 짧은 순간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서비스란, 또는 고객만족이란 인사와 친절, 그리고 봉사 등도 중요하지만 그 밑바탕엔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고객 불만이나 오해가 두려워 내가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제안이나 행동을 피한다면 고객 만족뿐 아니라 고객감동은 헛된 가식일 뿐입니다.


지금도 고객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진심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두려움보다 용기를 내고 고객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가지 않으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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