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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l 22.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곱빼기가 곱빼기가 아닌 세상

코로나로 쉬고 있는 요즘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 녀석을 태우고 이리저리 다니는 기사가 되어버렸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니다 보니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낸다.

아내를 회사에 태워주고 집에 오면 격주로 등교하는 딸과 아들을 챙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산책이나 독서로 때우며 생각만 해오던 것을 하나씩 하나씩 시도해본다.

결국은 아내가 아닌 마누라의 잔소리로 끝날 것들이지만 해보지 못하고 미련만 갖는 것보다, 일단 저질러보고 마누라 잔소리 듣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또 하나 즐거운 것 중 하나가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과 함께 엄마 몰래하는 군것질의 즐거움이다.

남편의 건강을 핑계로 나의 모든 먹거리에 제동을 거는 마누라가 없는 낮 시간에 격주로 등교하는 아들 녀석과 삼겹살도, 구워 먹고 칼로리 빡센 배달 음식도 시켜먹고, 냉장고에 쟁여놓은 아이스크림도 골라먹는다.


특히 학원 가는 아들 녀석과 중국 음식점에 가서 시켜먹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은 아들 녀석과 가장 빨리 의견이 일치하는 일상 중에 하나다.

생각해보면 내 소울푸드는 짜장면이 아닐까 싶다.

유독 자주 먹었고 수시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은 어느 동네를 가든지 내 식욕을 만족시켜주는 음식이다.

지역마다 그 맛은 차이가 있지만 웬만해선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음식이 바로 짜장면이다.

그런데 요즘 그 짜장면이 나를 가끔 실망시킨다.

분명히 곱빼기를 시켰는데 먹고 나면 곱빼기가 아니었다.

곱빼기가 주는 포만감이 사라지고 꼭 만두를 몇 개 더 먹어야만이 다시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이, 곱빼기란 말에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외식하는 모든 음식이 배신감을 주는 것 같다.

어릴 땐 통닭 한 마리로 온 가족이 즐겁게 먹은 듯했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한 마리를 다 먹어야 하는 혼닭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짜장면 곱빼기의 배신을 뭐라 탓할 수도 없다.


비행기에서 먹 기내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풍성하다는 느낌은 아니어도 한 끼를 먹으면 그리 부족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끔 메인 디쉬(앙뜨레, Entree)를 두 개씩 먹는 승무원이 있었으나 요즘처럼 앙뜨레 두 개를 기본으로 먹지는 않았다.

비행기에 탑재하는 모든 물건은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손님에게 제공하는 기내식 마저 생산성 또는 비용을 생각해야 하는 비즈니스 환경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비용절감의 측면에서 기내식을 줄이는 이 상황에서, 반대로 풍성한 기내식 제공으로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도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저가 항공에서는 기내식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항공료를 싸게 한다고 하지만, 솔직한 내 판단은 우리나라 저가항공사의 항공료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다.

결국 항공사가 스스로 판단하여 고객만족과 비용 절감의 절묘한 경계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다.


곱빼기가 곱빼기가 아닌 이유가 뭘까?

10년을 저축해도 집을 못 사는 이유는 뭘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빚쟁이가 되는 이유가 뭘까?


중국집 사장님의 고민을 들여다보면 원재료 가격은 오르고 인건비 부담은 커진다.

각종 세금이나 금융비용도 커지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도 팍팍해지는데 가격 인상은 어렵다.

결국은 곱빼기 가격은 유지하되 곱빼기의 양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구체적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곱빼기가 곱빼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의 세상에서 열심히 노동한 대가는 조금씩 오르는데 물가나 세금, 주택비용은 곱빼기로 오른다.

짜장면이 잃어버린 곱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나는 늘 느끼는 요즘..

그저 코로나라도 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아들과 학원 앞 홍콩 반점에서 짜장면 곱빼기를 먹었다.

단무지라도 넉넉히 먹으려고 했는데 단무지 두께는 왜 그리 얇게 썰었는지...

모든 게 나에게 배신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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