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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Aug 02.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신문을 보지 않은지가..

아내의 출근길에서, 횡단보도 앞 신호 대기하다가 신문을 손에 쥐고 걸어가는 중년의 남성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낯설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문 구독은 물론이고 비행기에서 서비스되는 신문을 읽어 본 지가 아주 오래된듯하여 그런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신문을 보지 않은지가 된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생활화되고 모바일 환경이 더욱더 빨라지면서 신문이라는 뉴스 매체와의 접촉이 휴대폰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입사 초기에 기내에 탑재되는 신문의 부족으로 인해 승객들의 불만이 많았던걸 생각하면 요즘과 같은 상황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노선별로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신문 종류와 비 탑재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원하던 신문이 서비스되고 남아 있지 않으면 승무원에게 핀잔을 주는가 하면 소리까지 지르면서 신문을 가져오라는 승객도 많았습니다.

특히 4대 일간지로 알려진 신문은 늘 부족하여 짧은 비행시간의 국내선 구간에서는 다른 승객의 양해를 구해 헌 신문을 착륙 전에 불만 승객에게 가져다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이처럼 기내 신문 서비스는 승객에겐 유익할지 몰라도 승무원들에겐 힘든 서비스 중에 하나였습니다.


신문 서비스 자체도 승무원이 좋아하지 않는 서비스였지만 신문과 관련한 종사자인 신문 기자들도 승무원들이 서비스하기엔 다소 힘든 부류의 승객이었습니다.(모든 신문 기자를 일반화할 의도는 없음)

신문기자라고 하면서 자기네 신문이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 회사 고위 임원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경우도 었고,신문 기자임을 내세워 기내 무료 승급을 다짜고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 신문사 논설위원(주필)으로 알려진 사람이 좌석 불만을 제기하며 기내 좌석 승급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신문이나 신문기자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은 그들이 전하는 뉴스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며 정보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신문 기자는 그들을 신뢰하는 국민을 위해 정확하고 신속한 기사를 보도해야 하고, 신문 기자라는 신분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신문이나 기자들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진 않아 가끔 읽는 신문기사에서 정보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기레기라는 놀림까지 받으며 국민으로부터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신문이나 신문 기자에 대한 국민적 감정은 과거에도 그리 좋지만 않았는데, 제 기억 속에 신문기자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게 하나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는 승객은 대부분이 국가 공무원과 기자들입니다.

그런데 당시 전용기를 탑승하는 선배가 경험담을 이야기해 준 내용 중에, 신문 기자들이 공무원을 놀려대면서 부르는 호칭이 '공돌이(절대 특정 직종의 사람들을 비하할 의도 없음)'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기자A : " ㅇㅇ씨(여승무원), 저 쪽에 앉은 공돌이는 식사 뭐 먹었어요?"

여 승무원 :"(ㅋㅋ) 네, 한식 드셨습니다~"

기자A : "그럼 나도 한식 주세요"

공무원 B(근처에 앉아 있던):"ㅇㅇ 씨, 기자랑 남자 몸의 정자(精子)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여승무원: " 네? 잘 모르겠는데요?"

공무원B: " 음~ 그건 인간(人間)될 확률이 2억 분에 1이라는 거죠 ㅋㅋ"


이 이야기를 장례식장에서 들었는데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기자분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하겠지만 그날 그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아닌 모든 사람은 폭소를 터뜨리며 공감하였습니다.

기자란 직업을 가진 승객을 손님으로 응대할 때 승무원들이 힘들어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만나는 승무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낄낄대던 기억이 납니다.


기레기란 오명을 얻으면서도 나름 철저한 기자 정신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분들도 많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분들의 기사를 접할 때는 신문의 소중함과 기자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곤 합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신문은 발행부수와 함께 그 종류도 어마어마했습니다.

4대 일간지를 포함해 지방 발행 신문까지 모두 제호를 나란히 해서 카트 위에 세팅을 하면 두줄로 해도 모자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인터넷 신문과 모바일 기기의 발전으로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비행기에서 신문을 찾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비행기 탑승 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만 봐도 신문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인터넷 신문 또는 잡지 등으로 신문은 점점 그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뉴스를 접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기자가 되기 위한 진입 장벽 역시 다양하고 쉽게 되었습니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신문 기사 형태로 각종 SNS 및 포털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하지만 이런 보편성의 혁신 가져다준 폐단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기사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신문 발행의 폐단은 여지없이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들양심과 정의보다 구독자의 시선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더 많아지는 경향이 빈번해졌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성향이나 의도에 더 많이 흔들리는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차라리 신문이나 기사를 안 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나 스스로가 올바른 가치관과 확고 부동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짜 뉴스로 인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문 기사 내용에 대한 의구심과 혼란이 가져다준 무관심이 시대적 변화라는 파도와 함께 신문의 쇠퇴를 가져온 거 같습니다.

신문이 없어도 기사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신문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거 같습니다.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저는 대학 때부터 믈 신문 2가지 이상을 가방에 넣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용한 방안의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종이 형태의 신문은 사라지겠지만 가짜 뉴스와 쓸데없는 정보는 더 늘어날 듯합니다.

그 흔들림에 동요 없이 세상을 살 수 있는 똑바른 마음을 갖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펼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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