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split May 31.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어느 할머니의 미소

지금도 그 할머니의 미소는 가끔 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입사 초년 시절 뉴욕에서 돌아오는 13시간이 넘는 비행기 안에서 그 할머니는 좁디좁은 이코노미 좌석 창측에 앉아 계셨습니다.

747 항공기 좌석 배열 특성상 창측에 앉은 사람이 화장실을 가려면 두명의 사람에게 힘겹게 양보를 구하지 않으면  통로로 나가기 어려운 구조라, 창밖의 풍경에 특별히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은 굳이 창측에 앉을 이유가 없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몇번 비행기 여행을 한 사람들은 그러한 불편을 피하기 위해 통로측 좌석을 선호하게되고, 통로측  좌석에 배정받지 못하게 되면 표정부터 달라지면서 괜시리 승무원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사소한 이유를 트집잡아 승무원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날 그 할머니는 소박한 차림에 당시에도 다소 순박한 할머니들처럼 머리까지 쪽진 옛 어머니 같은 할머니였습니다.

미국엔 무슨 이유로 다녀 가시는지는 몰랐지만 비행내내 오가며 마주치는 눈빛에서 할머니는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빈좌석이 하나도 없었던 그날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옆자리에는 덩치가 산만한 외국인 2명이 앉아 있었고 표정마저 험악해 보였습니다.

신입 승무원으로서 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관심은 제쳐두고 좌석승급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당시의 나로서는 오가며 나눈 할머니의 미소가 그저 나에게 보내는 친절의 미소로만 여겨졌습니다.


어린시절 친할머니와 함께 잠들고 친할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다닌 나로서는 그  할머니에게서 사람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륙 후 약 7~8시간이 지난 후 문득 할머니의 미소에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를 찾지못한 채 무심코 다시 할머니 좌석 부근을 지나다 할머니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있는 외국인 모습을 보고 생각나는게 있었습니다.


'혼자 여행하시는 할머니께서 좌석 때문에 많이 불편하시겠네..식사는 입에 맞으셨을까? .,피곤하시지는 않으신가? ..동행이 없으셔서 심심하시진 않으실까?..그런데.,'

순간 내 머릿속에서 화장실 가시는 걸 못 보았던것 같았습니다.


휴식시간이라 비행기 안 조명은 꺼져서 어두웠지만 상영되는 영화로 인해 희미하게 할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체없이 할머니에게 여쭤보았습니다.

" 저...할머니 . 혹시 화장실 가셔야 되지 않으세요?.."

순간,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지 않아도 가고 싶었는디, 우짤찌 몰렀으리..아이고메.."


'아!! 나는 아직  멀었다. 할머니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계속 미소만 지었으니..'

자고있는 외국인에겐 미안했지만 , 2명의 외국인을 깨워 사정을 얘기하고 할머니를 화장실까지 모시고 갔습니다.

연신 고마워 하시며 웃으시는 할머니에게 도착까지 잘 모실테니 화장실 가시고 싶으시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시라고 알려 드리고 , 할머니 옆좌석 외국인에게도 혼자 여행하시는 할머니라고 알려드리고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행기라는 공간은 일등석과 이등석 그리고 이코노미라고 하는 삼등석으로 나누어지는게 일반적입니다.

아무래도 가격에 따라 나누어진 좌석이라 이코노미좌석은 힘들고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까다로워진 좌석 승급 규정으로 인해 승무원에 의한 임의 승급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상황의 승객을 만나도 편의를 봐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이후 할머니께서는

그 불편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나와 눈이 맞주칠때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시며 계속 고마워 하셨습니다.

만석의 항공기에서 좀 더 편하게모시지 못했던 당시의 아쉬움으로 인해 지금도 나는 비행기에서 만나는 모든 할머니들에게 대화도 먼저 건네고 수시로 불편한점이 없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이제 나자신이 그때의 할머니 나이를 10여년 앞둔 시점에서 늘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감 보다 인간적 감성으로 승객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승객분들중에는 고집불통에 무례하면서 이기적인 분들도 더러 있지만, 그 승객의 입장에서 상황을 받아들이면 이해와 동시에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젊었던 승무원 시절에 만났던 그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미소가,  지금껏 나의 친절함을 잃지 않게 하는 내 서비스의 원동력임을 요즘에 한층 더 실감합니다..


문득 20년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모습이 떠오르는 밤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 타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