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아야 한다는 말
젊은 나이 때는 무엇을 하더라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성들 사이에는 힘으로 견주는 경쟁에서 더욱 그렇다.
돌멩이도 소화시킬 혈기 왕성한 청춘이니 왜 그런 마음 들지 않겠는가.
나도 한 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경쟁의 중심에 우뚝 선 적 있었다.
체육관은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아름다운 육체로 변모하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든 매력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한 것이든 북적거리는 체육관은 바람직스럽다.
이런 체육관에는
왜소한 체격으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앙상하게 마른 사람을 볼 수 있는가 하면,
고단한 삶이 연속되는 악순환 속에서 나태한 습관과 절제하지 못한 먹성의 결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의 근육질 청장년들이 어깨가 뒤로 휠 정도로 펴고 체육관 이곳저곳을 거만 스러이 누비는 모습도 볼 수 있는가 하면,
아랫배는 올챙이를 연상케 하고 다리는 개구리 뒷다리를 떠 올릴 만큼 연약한 하체를 가진 사람도 보인다.
이런 사람은 행여 근육질 남성이 시비라도 걸까 두려운 나머지 잔뜩 겁먹은 채 살방살방 체육관 구석을 오가는 것 같아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떤 우람한 근육질 남성은 운동기구를 독점하고 다른 분의 이용 기회를 뺏고도 미안해하는 기색 한점 보이지 않으니 더욱 밉상스럽다.
여기에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며 듣기도 거북스러운 거친 숨소리에 큰 기합 소리까지 더해 주변 시선을 끄는 추태까지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누가 누가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나 대결이라도 하는 양 주거니 받거니 중량 올리기에 여념 없는 꼴불견을 보이기도 한다.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면 누가 칭찬과 상이라도 준단 말인가.
인격자 반열에 오르기라도 한단 말인가.
모두가 부질없는 짓거리인 줄도 모르고.
나는 코로나19 창궐 전까지 서울 어느 체육관에서 건강과 몸매 다듬질을 위해 열심히 체육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던 적이 있다.
60대 초반이던 초로의 그때도 마음만은 늘 젊었던지라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오만한 마음에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며 그들의 기를 죽이려 만용을 부린 적이 있었다.
이런 만용에 우람한 체격의 청년도 결코 질 수 없다며 은근슬쩍 내가 들어 올린 중량보다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며 곁눈질로 나를 견제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철없는 남자들의 자존심 대결은 체육관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참말로 낯 뜨거운 짓거리가 아니었나 싶어 지금 생각해도 화끈거리는 두꺼운 얼굴.
돌이켜 보면,
무거운 중량으로 청춘의 기는 죽였을지는 몰라도 무거운 중량에 반비례한 내 인품의 무게는 한 없이 가벼운 깃털 같았을 것은 왜 몰랐을까.
바보, 등신, 모지리.
코로나가 일상을 좌지우지하며 활개 치던 사이 4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이제 곧 70을 눈앞에 두고 있다.
24년 8월 경기도 양주시로 이사 온 후 양주도시공사 스포츠센터 헬스장에서 열심히 체력 다지기에 여념 없다.
헬스장 모습은 전국 어느 곳을 가나 비슷한 것 같다.
비슷한 운동기구에다 운동하는 사람들 면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운동하는 사람들 간에 보이지 않는 체력을 뽐내는 모습도 어찌 그리도 비슷한지 놀랍다.
오늘도 어떤 장년 남자가 내가 들어 올린 운동기구의 중량 서너 배가 넘는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하며 잘난 척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이에 질세라 더 무거운 중량으로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라며 오기를 부렸을 텐데.
70을 눈앞에 둔 지금은 NO NO NO.
나이 먹는다는 것은 내려놓는다는 말의 다른 말일 것이다.
이미 가진 것, 원하던 것, 도전 의식 등 수많은 탐진치는 이제 하나 둘 내려놓고 빈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이 들어 갖추어할 덕목 아닐까 싶다.
양주도시공사 옥정스포츠센터 체육관 벽에 걸린 거울 상단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 준비운동 필수, 수시 몸 상태 체크, 수준에 맞는 운동,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무리는 절대 NO ".
겉멋 부리지 말고 자신의 체력에 맞는 안전한 운동을 하라는 충고이자 경고의 의미일 것이다.
꼭 이 경고용 글이 아니더라도 70줄 가까운 늙은이가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려 얻는 이익이 무에 있겠는가.
아무리 체력을 길러 뽐내고 생명을 연장한들 기껏 100년 살이 짧은 인생인걸.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자신의 체력에 맞게,
그날그날 컨디션에 맞는 운동으로 평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젊은이들과 대결하여 무슨 이득을 볼 것이라고, 나 원 참.
젊은 청춘들이여,
우람한 근육맨들이여,
늙은이의 오만함을 부디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