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가 지지대를 인식하기까지...
딱 십 년째가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2010년이. 나름대로 열심히 놀고, 공부하며 능력에 비해 큰 꿈을 안고 내달리던 내가 산산이 부서졌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의 나는 인생에서 '열심히'와 '노력', 그리고 '진심'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을 온전한 내 '몫'이라고 믿었던 어리석고도 천진한 나는 자만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밝게만 보았고, 내 시야는 편협했으며 철딱서니까지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무모함이 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나는 꽤나 뚜렷하고도 거대한 목표가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30대 이전에 박사를 졸업하고, 내가 선택한 전공에 있어서 인정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것, 둘째는 내 이름을 내건 보육원을 내 인생 말년쯤에는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셋째는 서울에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건축, 문화와 예술의 집합체인 한옥호텔을 짓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 목표를 가지고 확고하게 해내리라 했다. 결심하게 된 계기는 희미하나, 그 열정만큼은 또렷했다.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자면, 우선 첫째 목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30대 이전은 아니지만 나는 박사를 다니며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 공부는 인정받을 만큼도,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나름 하고는' 있다. 둘째와 셋째 목표는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제적인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며 주눅이 들어 퇴색되어 버렸다. 물론, 그때에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재테크를 통해서 스스로 가능하게 하도록 할 것이라 당차게 생각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능력 밖의 목표로 허덕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통의 길로 접어든 지 꽤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욕심 꾸러미를 가득 메고서 가는 것이 꽤나 지친다고 생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예술 인턴사업으로 협회에서 인턴으로 약 1년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모든 것이 풀기 어려운 낱말풀이 같았고, 그만둘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없었기에 밤마다 눈물로 배갯닢을 적시며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으로 난 무너져 내렸다. 엄마의 아픔은 내게 충격이자 슬픔이자 스스로에 대한 통탄이 되었다. 나는 썩 효녀가 아니면서도 이때만큼은 깊은 효심으로, 엄마의 건강을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며 매우 슬펐다. 단순히 엄마가 '아파서'라기보다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가 아프다'는 점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른인 척하던 20대의 내가 어린아이로 돌아가던 순간이었다. 서러움에 엉엉 울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우리 엄마가 아프다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저앉았지만 나아가야 했고, 내 할 일은 해야 했다. 그게 어른의 탈을 쓰고 내가 지고 있는, '삶의 짐'이었다.
'나'만 알고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던 인생에서 간과한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내가 초라도 되는 양 내 모든 걸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인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은 생각하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촛불도 촛대 바로 밑은 비추지 못한다. 그 촛대 때문에 초가 설 수 있었던 것인데, 초는 그 촛대가 곧 나를 위해 있는 당연한 존재로 인식했었나 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잊는다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잊지 못하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난 벌이라고도 생각한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불과 10년 전의 내 깨달음과 생각이, 그로 인해 순간에 충실하기로 변화하고자 한 내 다짐이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좀 가혹하다. 아직 엄마가 아프진 않지만, 또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은 너무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경고라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다. 다시 정신 차리라는 의미라면 좋겠다. 이젠 어리석은 딸이 아니라, 엄마의 초를 밝힐 수 있는 촛대가 되어 지탱하고 기댈 수 있게 해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