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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Dec 26. 2020

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여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부. 우리 가족은 4인이라 4인실 쿠페에 묵었다.

감격적인 순간이다. 마침내 오른 시베리아횡단열차. 출발 십여 분 전, 작별의 키스를 나누는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 앞에는 우리 가족이 3박4일 간 지낼 칸의 승무원이 우두커니 서 있다. 역시나 무표정한 할머니 스타일이다. 앞으로 나는 그를 차장 언니라 부르기로 한다. 티켓을 검사받고 배정받은 호실로 오르는 모든 발걸음이 가뿐가뿐하다. 우리가 머물 객실은 2등급 쿠페라 불리는 4인용실이다. 4인 가족이니 딱 안성맞춤인 셈이다.


아이들과 함께 객실에 들어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만세 소리가 나왔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위기를 이겨내고 이번 여행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기어이 잡아탔으니까. 열차에는 쿠페 말고 6인실도 있다. 말이 6인실이지 직접 보면 좌우상하가 다 트여 있는 구조라 가족끼리 지내기엔 불편해 보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만의 독립된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선택에 따르는 대가   

 

푹푹 찌는 8월 더위는 러시아라고 다르지 않았다. 짐을 풀고 이부자리를 깔고서 대충 4인실 방을 꾸미니 어느새 땀으로 흥건하다. 밀폐된 침대방에 2층으로 조그맣게 열리는 창이 다였다. 두리번두리번 습관적으로 에어컨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차장 언니를 붙잡고 "에어컨?"이라 말해본들 무표정으로 지나갈 게 뻔하다. 순간, 이렇게 정녕 사육되어야 하는구나 싶어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것도 3박4일을 꼬박 여기서 지내야 한다니 정말 미친 짓 같았다. 로망과 환상의 시베리아열차 이미지는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다. 침대 딸린 무궁화열차에서 72시간 이상 숙식을 해결하라는 말이 아닌가. 거기다 씻을 데도 없다는데.     

불편해할 아이들보다 당장 나부터 걱정이다. 새로운 경험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는 항상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시베리아 바람에 밀려가는 꿈의 침대열차    


그런데 1시간쯤을 칙칙폭폭 달리고 나니 금세 시원해졌다. 도시를 빠져나가고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만이 맴도는 시베리아 평원으로 들어섰을 때다. 그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대지의 바람이 침대의 축축한 내음을 말리고 온 몸의 피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빠의 이런 저런 잔걱정과는 상관없이 즐겁다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 태윤이는 이층 침대에 거꾸로 매달려 혀 꼬이는 소리로 ‘시베리아’를 연거푸 반복했다. 이에 뒤질세라 첫째 태민이는 ‘이르쿠츠크’로 응수한다. 어린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발음이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굳은 혀로 따라해 보았으나 나는 아이들의 신나는 핀잔만 들었다.


너희들은 벌써 적응했구나. 비행기타고 택시타고 열차타는 일이 힘들 텐데도 마냥 재밌다는 너희들 얼굴 보는 일이 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보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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