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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Feb 02. 2022

아무튼, 눈물(1)

이렇게 펑펑 울지는 차마 몰랐다


안고 자던 베개를 나도 모르게 내팽개쳤다. 왼쪽 눈동자가 이물질이 낀 것처럼 욱신거리고 아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러려고 애썼다. 어젯밤 잠들기까지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는 동안 몸부림이 심한 막내의 발차기로 안면을 가격 당한 사건이 더러 있긴 했지만 막내도 다른 식구도 그날만은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할 만치 너무 아팠다. 눈을 감고 자는 사이 누군가 강제로 내 눈동자를 파먹은 것처럼 쑤셔서 눈물이 주르르 나왔다. 아니, 엉엉 울었다. 새벽 5시, 동이 틀 시간도 아니었고 눈조차 뜰 수 없으니 그야말로 보이는 모든 게 캄캄했다. 한 가지 짚이는 건 있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만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들이나 오랜 친구들과 어울려 나날이 마신 술이 생각났다. 만취도 그렇거니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옷도 제대로 못 벗고 잤던 장면이 떠올랐다. 게다가 최근 내 몸은 여러 군데서 불편한 신호를 보내오던 참이었다. 불현듯 옆구리가 결린다든가 소화불량이 오래간다든가 할 때마다 덜컥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이제 내 나이도 쉰. 마음은 삼십 대인데 벌써 오십 대라니 정말 말도 안 될 일이라며 펄펄 뛰었다만 몸을 함부로 놀리는 청춘을 보냈으니 이제 단단히 탈이 날 법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눈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간 질환으로 눈 압이 높아진 게 이유였다는 어느 후배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 일이 아니라며 흘려들었던 주위의 백내장이나 녹내장 수술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인정하기 싫었다. 단지 이물질이 들어가서 그럴 거라는 믿음으로 눈을 부라리거나 질끈 감으며 연신 눈물을 쥐어짜 냈다. 왜 다들 가로등 훤히 비추는 여름 강변을 걷고 있는데 눈 깜짝할 새 날아와 눈에 박힌 날파리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지 않은가. 잠시 고통스러워도 눈물을 쥐어짜 내면 그 고얀 녀석이 시원하게 쓸려나갔던 그런 경험 말이다. 그렇게 나는 끝까지 내 눈동자의 고통이 이물질 때문이라고 우기며 눈물을 짜냈다.



그러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커졌다. 짜낸 눈물과 새는 눈물이 뒤엉킨 내 안구는 터진 실핏줄로 붉게 부풀어 올랐고, 안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바깥쪽으로 후려쳐 오는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갔다 했다.

그제야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이물질의 확신을 포기했다. 눈 안에 큰 염증이 생겼거나 다른 장기의 문제가 심각한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4시간을 울며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대낮 같이 밝은 거리를 칠흑 같이 어두운 몰골을 하고 울면서 그리고 거의 기어서 집 앞 안과를 찾아갔다. 중학교 시절 아폴로 눈병을 앓은 이후 처음 가보는 안과. 어슴푸레 뜬 내 실눈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눈부시게 앉아 있다. 그는 내 왼쪽 눈동자에 소독액을 적신 가제를 대고 이름 모를 안약을 투여한 후 의료용 조명으로 얼마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한 마디를 던진다.



'베개입니다.'

'네?'


'베개가 원인입니다.'

'?'


'베개가 당신의 눈을 찌른 게 거의 확실합니다.'

'??'


'얕은 수면 상태인 사람들은 때로 실눈을 뜬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안고 있던 베갯잇으로 자기 눈을 찌르기도 합니다. 혼자 잤고 아무 일도 없던 아침에 눈이 아팠다면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 눈동자 사진을 보세요. 약물이 지나간 자리에 녹색 한 줄이 보이시죠. 살짝 긁힌 자국입니다.'



아, 베개가 원인이었다니! 새벽 5시,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아파 일어나면서 내팽개친 그 베개가 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결정적인 한 방.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통증을 가라앉힐 약물보다 '눈부신 천사'의 이 말 한마디가 내 안구를 정화시키는 데 백 배는 더 기여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눈에 넣은 안약이 흐르는 건지, 통증으로 고인 눈물인 건지, 아무튼 나는 알다가도 모를 눈물을 주르르 흘려내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의 말처럼 하루가 지나니 통증은 가라앉고 살 만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내 나이 쉰이요,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비장함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지금 하하하 웃으며 그 눈물의 지옥에서 유쾌하게 벗어나고 있는 참이다. 차마 이렇게 울지는 진정 몰랐으나 쓰라린 눈물을 맛 본 후에 깨달은 진리로 인해 나의 밤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베개 같은 건 껴안고 자지 않으리라. 특히 모서리가 길게 삐져나온 베갯잇이여, 안녕.

그리하여 오늘도 난 반듯하게 누워 잠에 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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