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중고가 없다
그대가 겪는 웬만한 외로움은 그대를 사랑할 수도 있는데 사랑하지 않는, 쓸데없이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하지 않던 이가 그대를 사랑하게 되며, 그대를 사랑하게 되는 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던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어떨까. 어떤 외로움이 사람을 고프게 하든 간에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해서 바보가 되는 확률을 줄였으면 싶다.
로빈슨 크루소가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면, 그대가 아는 외로움을 그의 상황에 이입한 그대 자신의 추론 덕분이다. 그는 혼자였을 뿐이고, 혼자라는 건 외로움을 느낄 필수요소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사랑을 기다리기보다 그대 스스로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대를 사랑할 수 있는 수많은 그 가운데 그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특별할 터다.
<너는 나를 사랑해도 좋아.>
그가 헷갈리지 않도록 그대 자신을 지목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그를 사랑하는 한 그렇다. 물론, 그대가 던져준 사랑을 주워 돌려주는가의 여부는 순전히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가 그를 사랑함으로써 그가 그대를 사랑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 그의 사랑은 그에게 맡겨두고, 그대를 가장 잘 아는 <그대 자신>도 그가 사랑할 사람 가운데 하나로 넣어둔다. 그대의 사랑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그 정도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대가 사랑하니까 되돌려주는 보상적 사랑보다, 그 자신의 심로(心路)를 따라 그대에게 온 사랑이 훨씬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