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중고가 없다
순수를 더럽히는 것은
세월이 아니고,
대개 선택일 겁니다
'대개'라고 쓰는 까닭은
수많은 선택에도
오염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 서있는
그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대의 눈에 띄려는
주위의 수많은 시선을
좌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그대가 선택한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도 나는 온몸으로 그들의
선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배타적이진 않아도
조바심으로 가슴을 졸입니다
겉으로는 흔한 쓴웃음도
함부로 보일 수 없습니다
마음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고
내게 그대를 차지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한심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For the Good Times>를
그대가 부르는 건
우연이라고 믿습니다
그대는 나 아닌 누구라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대 마음에 내가 없는 것은
내게 부조리합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순수입니다
자랑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나타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채
우리 자신의 삶을
유예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고, 내 순수는
오염되어 왔습니다
삶의 치열함 덕분에
더러워진 겁니다
그러나 순수라는 것은
내가 판단하기보다는
나를 보는 그대의 눈에
맡겨 두어도 좋을 겁니다
나를 아쉬워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면 너무 슬픕니다
그대도 마찬가지겠지요
오롯이 나를 보이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그대로
그대가 나의 체온을
느끼게 할 겁니다
그게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순수입니다
내 삶에 그대가 없었던 것은
그대의 탓도,
내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순수는 나이와는 무관해서
여섯 살과 예순 살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순수는
세월을 먹고사는 타락과
반비례할 겁니다
무대에서 내려와 다시
내 옆에 앉은 그대를
나는 기꺼이 즐깁니다
그대를 즐기는 나를
그대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내 책임이 아닌 듯
나는 초연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선택 안에
놓여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굳은 표정이긴 해도
달콤함이 내 온몸을
휘돌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대가 내 곁에
남으리라는 걸 느낍니다
그대의 선택일 뿐입니다
이보다 달콤한 것을 나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그대는 내가
그대를 즐기도록 놔두었습니다
그대 역시 그런 나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나도 느낍니다
내게 눈을 주지 않으려고
그대가 애쓰는 것을
나는 뚜렷하게 느낍니다
그대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무심히 끼어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의 다정함을 느낍니다
나도 그대에게 다정합니다
인간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그 쾌락을 갖게 된 과정,
혹은 그 역사를 즐긴다는
폴 블룸(Paul Bloom)의
주장을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이 내 삶에서 내일보다
조금 덜 타락한 날이고
그런 순수로 오늘,
그대를 품은 나는 즐겁습니다
굳이 사랑이라고
우기진 않을 겁니다
나는 혼자 흐뭇해할 줄도
아는 사람이거든요